깨어있는 달팽이

소비는 무겁다, 소비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펌)

거울닦는 달팽이 2015. 11. 2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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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와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는 날 저녁이면 거리 곳곳이 온갖 물건들로 수북하다. 개중에는 멀쩡해 보이는 것들도 상당수다. 이사를 간 집 앞에도 버려진 물건이 가득 쌓여 있곤 한다.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참 열심히 사고 열심히 버리고 있구나.’ 싶다. 생각해보면 많은 일들이 소비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기본적 생계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조차 소비를 매개로 한다. 현대인은 어쩌면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외치는 ‘소비하는 인간’이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는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라는 모토의 오프(off)운동을 제안한다. 쇼핑, 핸드폰, 신용카드, 텔레비전, 차, 패스트푸드 등 소비사회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자는 운동이다. 개인적으로 오프운동의 실천은 무척 어려웠다. 우리 생활이 이미 오프하고자 하는 것들을 끊고 살기 힘들게 구조화된 측면도, 불편함을 감수할 나의 용기가 빈약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의식적으로 소비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가능한 덜 사고, 사게 되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려고 노력한다. 무언가를 싸다고 뭉텅이로 사기보다는 낱개로 산다거나, 냉장고에는 음식을 가득 채우지 않고 텅텅 비어갈 때 장을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덜 소비하려는 노력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소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현대사회의 소비주의 비판은 ‘소비 자체’가 아닌 ‘왜곡된 소비의 양태와 문화’를 향한다. 소비는 개별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타인과 세상에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 무엇하자는 소비인가, 문득 생각하는... ⓒ한상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많은 것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졌을까? 가령 아침에 먹은 바나나, 출근하며 마신 향 좋은 커피, 외식하면서 먹은 칵테일새우 등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것들은 제3세계 빈곤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현대인의 신체 일부처럼 되어버린 휴대전화의 원자재인 콜탄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반군은 콜탄을 팔아 그 자금으로 내전을 이어간다. 새우를 소비하는 과정은 어떤가. 맹그로브 숲을 파헤쳐 만들어진 양식장에서 자란 새우를 전 세계에 공급한다. 맹그로브 숲은 그 자체가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면서 쓰나미나 태풍을 막아주는 자연의 방파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참치의 경우도 그걸 낚기 위해 거대한 그물이 사용된다. 그 그물 안에는 참치 외에 수많은 물고기가 낚이는데 그중엔 치어도 엄청나다. 참치 외의 다른 물고기는 대부분 죽은 채 버려진다. 그러면서 바다의 수많은 생명체가 죽어간다. 만약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참치를 먹고 싶다면 참치만 잡는 ‘채낚기’ 방식으로 표기된 걸 구입해서 먹어야 할 텐데, 그런 참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또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악덕 기업의 물건을 불매하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지만 큰일이다. 잘 아는 번역자 선생님은 식량문제를 다룬 책을 번역하시면서 그 안에 나오는 ‘나쁜 기업’의 상품을 불매하신다고 했다. '나쁜 기업'의 리스트는 늘어가고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데, 그럼에도 아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수단으로 돈을 벌고,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거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기업을 불매하는 건 매우 중요한 소비행위다. 사실 기업주들이 두려워하는 건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논리와 담론조차 상품화해 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정작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그들이 생산한 상품에 대한 거부, 즉 불매일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이것저것 소비하지만, 알고 나면 그것은 중요한 선택이 된다. 환경과 생태를 고려한 작은 소비를 지향하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작은 실천일 수 있겠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면 소비는 상당히 무거워지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는 이 시스템 속에서 ‘소비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겠지만, 어떻게 무엇을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작은 움직임이 분명 이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김지환

 / 출판사 편집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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