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기는 멧세지

문제 해결과 해소(펌)

거울닦는 달팽이 2012. 11. 8.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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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에 있어서건

한 국가나 사회조직에 있어서건

문제가 있어 내 삶을 괴롭힐 때에,

그것을 다루는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

너무나 공감하는 글이어서, 퍼 놓아본다.

 

물론,

한잔의 술, 한잔의 커피를 곁들인 수다와 넋두리가

큰 위로와 공감이 되어

우리네 삶의 아픔과 피곤을 덜어준다는 것도

너무나  필요하며 소중하다는 사실도 인정하면서...♥

 

 

 

 

친구가 사는 것이 힘들다며 한숨을 쉰다. 융자를 받아 아파트를 장만했더니 집값은 떨어지고 은행이자는 오른다고, 각종 공과금과 대출이자와 노부모의 부양비와 자식들의 교육비가 빠져나가면 통장은 금세 마이너스가 된다고. 나도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지 않겠냐고 위로했더니 약간 밝아진 기색이다. "그렇지? 나만 힘든 건 아니지?" 하며 힘을 내야겠다고 한숨을 섞는다. 누구나 그렇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누구나 그렇다는 건 내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이고 모두의 문제라면 정말 무언가가 대단히 잘못된 큰 문제가 아닐까.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할 줄 몰라 안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엄두를 낼 여유가 없어서 피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문제가 내게 있는 게 아니고 사회에 있다는 걸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친구와의 대화는 하소연의 범주 안에서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 이 반복이 우리의 우정을 돈독하게 해준다.

"사는 게 힘들지요?"라며 측은한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해서 "당신이 힘든 것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라는 내용이 심도 있게 펼쳐지는 책들이 유독 많아졌다. 트렌드가 되었다 싶을 정도로. 더러는 잘 팔린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이 책들엔 문제가 많다. 대부분, 문제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병든 사회 구조에 있다고 말한다. 이 지적은 옳지만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사회 구조를 추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대안이 늘 허술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담은 책들은 대부분 앞부분만 흡입력이 있고 결론부분은 허약하다. 만약에 이런 책들이 결론부분, 미래의 사회상을 제시하는 데에 있어 치밀하고 세세한 것까지를 다룬다면 아마도 독자들이 외면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책을 즐겨 소비하는 독자들은 세세한 대안을 원하지 않는다. 세세한 대안은 골치 아프고 피곤할 따름이다.

우리는 문제해결을 욕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해소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에 따른 커다란 용기와 각오, 그리고 많은 절차와 희생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용기와 희생의 절차를 치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에 지친 우리에게 엄두가 나는 일은 우리의 한숨을 해소해줄 자잘한 위안들일지 모른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뭐, 위안하며 하루를 넘기고 한 달을 넘기면 어느새 고민은 내 삶에 고착된다. 그렇게 우리 삶은 표면적으로 지탱가능해지고 지속 가능한 것이 된다. 우리에게 유일한 지속가능성은 어쩌면, 고민이 내 인생의 일부가 된 채 내버려두는 삶일지 모르겠다.

먹성이 좋지 않아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피부가 자주 트러블을 일으키는 내가 먹성을 바꿔 몸 상태를 서서히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주력하기보다는 트러블에 연고를 바르는 것만을 꼼꼼히 하고 지내듯이, 내 삶의 모든 문제들은 아마도 얇은 해소만으로 하루하루 소비되고 있으리라. 내 삶은 한번도 근본적인 가치를 존중 받지 못한 채, 나로부터 이런 식으로 소외돼 왔을 테고, 내 삶은 삶대로 고독하고 나는 나대로 고독한 채 살아왔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위기감과 피로감에 해결은 너무 막막하고 우리는 그에 대해 무능하다. 해소를 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치사량의 용기를 낸 듯하다. 우리의 용기가 갸륵해 우리들은 술집에서 술로, 찻집에서 수다로, 길 위에서 할부 고급차의 위용으로, 명품백과 팔짱을 낀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으로, 대한문 앞 쌍용 해고노동자의 분향소를 지나며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것으로, 삼성 없이 우리나라가 어떻게 지탱하겠냐는 갑작스런 애국심으로, 트위터에서의 재잘거림과 페이스북에서의 '좋아요'를 복용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내 다음 세대에는 아마도 좋아지겠지 하며, 문제해결의 숙제를 대물림한다.

해결할 일이 위험수위로 누적된 사회에서의 이 이상한 해소 행위들이 내게는, '아프니까 청춘'이고 '외로우니까 사람'인 '피로사회'의 자연스러운 자기구제책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야만으로만 보인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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