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중에서

거울닦는 달팽이 2015. 4. 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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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중에서

 

 

 

 

 

1977년 9월 5일 무인우주선 보이저1호가 태양계 행성을 탐사할 목적으로 발사되었습니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뒤인 1990년 2월 초, 보이저 호는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 행성의 궤도를 넘어선 공간을 초속 18km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신호를 보내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사진을 찍어 전송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구로부터 60억km 떨어져 있던 보이저 호는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사진을 찍어 전송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지구는 어디 있을까요? 허탈하지만 저 작고 희미한 점 하나가 지구입니다. 그 희미한 작은 점 위에 바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저 작은 점 위에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어떤 표식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요? 저 먼지 같은 작은 별 하나 없어진다고 우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Pale Blue Dot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리는 이 사진은 1972년 아폴로 17호를 타고 달에 가면서 찍은 지구 사진과 극명하게 비교됩니다. 푸른 구슬blue marble이라 이름 붙을 만큼 영롱하게 아름다운 커다란 지구 사진에 비해 이 사진 속 지구는 하나의 먼지 같은 작은 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우주적 관점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먼지의 먼지와 같은 극미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진은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는 지동설이 밝혀지고 나서도 여전히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 여기는 우리의 자기중심성과 어리석은 자만을 잘 꼬집어주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교수는 이 사진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동명의 저서를 냅니다. 그는 저 작은 점 하나에 우리의 삶과 역사가 담겨져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깨달음은 삶의 무의미함이 아니라 깊은 겸손으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우리의 유일한 고향인 이 작고 희미한 점을 더욱 보존해나가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광대무변의 우주에서 찰나의 시간을 살다가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하면 오늘 심각하게 느끼는 나의 고민은 또 얼마나 사소한 일일까요? 내가 어떻게 되어야 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꿈이나 신념은 얼마나 사소한 것일까요? 그러나 이 먼지의 먼지 같은 존재가 우주를 생각할 줄 알고 우주를 통해 자신의 미약함을 들여다 볼 줄 안 다는 게 또 어찌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있을까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한 미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미물 안에 우주를 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미물일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미물이자 동시에 소우주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펌)아름다운 미물-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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