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세상

Alfred Brendel - Schubert - Four Impromptus, D935

거울닦는 달팽이 2016. 11. 1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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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가 강할수록 변덕은 더 심하다. 오랜만에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
.1931~)의 슈베르트 연주를 찾아들으며 느낀 생각이다. 비록 오래 전이지만 한
때는 브렌델의 음반-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한 장을 사기 위해 먼 거리를
왕래했으며 귀밑머리를 길게 기른 유태풍의 헤어스타일,두터운 검은 뿔테 안경
이 특징인 브렌델 얼굴이 크게 부각된 필립스의 그 음반 한 장을 보물처럼 품에 안
고 돌아올 때 기분은 나를 듯 했다. 그 이름은 슬며시 잊혀졌다.CD 시대 개막이
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간결하고 냉정할 정도로 정확한 그 연주는 언제나 긴 여
운을 남기며 단단한 신뢰감을 안겨줬다. 적절하게 감정을 억제해서 도리어 듣는
사람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는 능란한 기법이 그의 상표였다.
 
 브렌델을 찾은 것은 이블린 크로세(Evelyne Crochet,1934~)가 연주한 슈베르트
의 <즉흥곡>과 같은 계열의 세 개의 소품(D.946)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프
랑스 태생에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크로세는 지금 내가 한창 열애중인 피아노 연
주가. 그의 바흐 <평균율>연주는 비할 데 없는 평정심과 맑은 품격을 보여준다.
이블린 크로세의 슈베르트 소품 연주 역시 최상급이었다. 슈베르트 말년의 보석
인 이 3곡, 특히 2번 연주를 들는 순간 '갑자기 우아하고 화사한 회상의 정원'에
들어와 있는 느낌에 젖었다. 회상은 슬픔의 회상이다. 그런데 슬픔을 이렇게 우아
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가. 어둡고 우울한 슬픔의 회상이 아니라 아름답고
멋진 슬픔의 회상! 이것이 슈베르트 음악이다.'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만이 사
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작곡자가 일기에 남겼다는 글귀이다.
 

 아름다운 선율의 창조자로 으뜸인 슈베르트에게 교향곡을 비롯 많은 작품이 있지
만 실제로 내가 가장 즐겨 듣고 친근감을 느끼는 곡은 <즉흥곡>과 <피아노소품> 등
이다. <즉흥곡.D899>의 3번과 <즉흥곡.D935>의3번에 나는 한 시절 완전히 들려 지
냈다. 불과 십분여의 이 선율이 내게 교향곡이나 소나타 못지 않은 비중을 가졌다.
안드레이 가브릴로프(Andrei Gavrilov(1955), 러시아 전후세대인 이 연주가 역시
내가 지금 열애중인 연주가이다. 그의 바흐 <프랑스조곡> 연주는 백만불 급 연주.
그는 가끔 양손 중지에 큰 호박반지를 끼고 연주하는데 이 호박이 마력을 발휘하
는지 듬직한 체구에 믿어지지 않을만큼 섬세한 감각을 뽐낸다. '건반의 세공사'란
칭호를 그에게 붙여놓았다. 그의 슈베르트 <즉흥곡>연주 역시 섬세하고 강약의 대
비가 뚜렷한 이색 연주로 듣는 맛이 새롭다. 여기 소개한 바 있는 마리아 유디나
의 슈베르트 연주도 개성 강한 독자 취향과 해석으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간
결한 음 처리와 탁월한 리듬감, 애매한 것을 허용하지 않는 선명한 태도, 이것이
<즉흥곡>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고독과 비애의 솔직한 고백, 이것이 그가 해석
한 <즉흥곡>일 것이다. 특히 마리아 유디나의 <즉흥곡.D935> 연주는 그의 좋은 특
성들이 고루 발휘된 멋진 연주이다.
 

 알프레드 브렌델은 어떨까? 그는 이미 낡았을까? 자연스럽게 눈길이 그에게 향했
다. 브렌델은 1976~1977년 사이 독일 라디오 브레멘에서 진행된 슈베르트
특집 실황녹음에 시종 참여했고 그 내용은 DVD 음반으로 제작되어 국내에도 소개
된바 있다. 그 화면에 등장하는 브렌델은 여전히 젊고 정력적인 모습이었다.슈베
르트 특집을 주도할만큼 그는 누구보다 슈베르트 음악에 지지와 옹호를 보낸다.이
특집을 보면 그는 슈베르트 생애와 모든 작품에 학자 못지 않은 열정을 바치고 있
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연주로 크게 인기를 얻었던 브렌델이지만 그의 슈베르트 
연주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낡았을 거란 추측은 기우였다.이미
고희를 훌쩍 넘긴 노인이 되어 있으나 건반 앞에서 그는 여전히 젊고 정력적인 연
주가였다. 그의 <즉흥곡>은 감각적이거나 파격과는 거리가 있지만 절제로 빚어내
는 정확한 톤의 울림은 깊고 길게 이어진다. 이미 거장이 된 브렌델, 그의 고지식
할 정도로 꾸밈없는 소박한 연주는 어떤 파격보다 설득력과 공감을 준다. 이것이
슈베르트 참모습일 것이다. 음반으로 듣던 때 이 사람은 건반 앞에서도 한 점 표
정변화 없이 냉정한 자세로 일관할 거라고 상상했는데 <피아노 소품,D946>의 2번
에서 그는 흐느끼듯 몸을 뒤틀며 전율하는 모습을 보였다.냉정한 연주 이면에 그
도 누구 못지 않게 뜨거운 열정의 인물인 걸 알았다.
 
 공교롭게 브렌델과 이블린 크로세가 손을 맟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
노 판타지(Op.103,D940)가 눈에 띤다. 둘의 성향으로 미뤄 상상하기 힘든 듀엣이
다.이블린 크로세는 몸을 감추고 노출을 꺼리는 인상을 준 것이다. 그에 관한 자
료도 바흐 곡과 가브리엘 포레의 곡을 제외하곤 만나기 쉽지 않다. 이것은 예상
밖의 선물이다. 드물게 짜임새가 좋고 균형잡힌, 아름답지만 슬픔이 배어있는 곡,
어느쪽이 리드를 하는지 구분하기 힘들만큼 네 손의 발란스가 잘 어울어진, 명인
들의 품격을 보여주는 좋은 연주다. 이 <F 단조 판타지>는 자주 연주되는 인기곡
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18504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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