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기는 멧세지

법륜스님 -자식 망치는 그 놈의 정

거울닦는 달팽이 2012. 3.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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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여인의 세 단계(The Three Ages of Woman)

 

 

사랑은 단계별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성을 기울여서 보살펴 주었을 때의 사랑이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정성을 들여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게 사랑이에요.

둘째, 사춘기의 아이들은 간섭하고 싶은 마음, 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지켜봐 주는 게 사랑입니다. 

셋째, 성년이 되면 자기 마음을 억제해서 자식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엄마들은 헌신적인 사랑은 있는데 지켜봐 주는 사랑과 냉정한 사랑이 없어요. 이런 까닭에 자녀 교육에 대부분 실패합니다. 자식이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인데도 아들 딸 문제로 고민하고, 손녀손자 문제로 걱정합니다. 그것은 누구 탓도 아니고 본인이 어리석은 마음을 내서 스스로 무거운 짐을 만든 거예요.


지금 우리 부모들은 아이를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을 지상과제로 생각해서,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명문대학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하는데, 남은 인생을 부모가 어떻게 감당할 거예요.


자립해야 할 때 스스로 서게 하고, 스무 살이 넘으면 무조건 집에서 쫓아낸다는 생각으로, 자식의 정신력을 강인하게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해요. 그런 다음 자식이 스무 살 넘으면 인생에 간섭을 안 해야 합니다.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들을 낳아서 남의 머슴살이를 시키면 부모를 봉양하고 효자가 되고, 논 팔아서 대학 공부를 시키면 불효자가 된다.”
우리 부모들은 아이를 키울 때 어린 시절에만 키우기 힘들지 아이가 열다섯 살, 열일곱 살, 스무 살만 되면 일꾼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머슴살이를 하든, 뭘 하든 벌어서 부모를 봉양했어요. 그러니까 애를 많이 낳으면 부모는 든든했습니다. 키울 때 힘은 들지만 자식이 다 재산이 돼서 부모를 도와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됐어요. 자식이 다 컸는데도 집착을 못 버리고 강아지처럼 키워서 평생을 먹여 주고 돌봐줘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금 50대, 60대 어머니, 할머니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다 자식 걱정입니다. 나이가 들면 근심 걱정이 없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거예요.


“대학,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왔는데, 다시 공부하러 나간답니다. 뒷바라지하기도 힘들고, 결혼은 언제 할지 걱정입니다.”


이렇게 나이 든 자식 공부 뒷바라지에 결혼 문제까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성년이에요. 성년이란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란 뜻입니다. 뭘 하든 자기 인생 자기가 살도록 부모는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장가를 가든, 혼자 살든, 스님이 되든, 사업을 하든, 취직을 하든, 유학을 가든 본인 인생이니 자기가 살 권리가 있어요. 이건 부모라도 더 이상 간섭하면 안 돼요. 자꾸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그 마음을 딱 끊어야 합니다.


“엄마, 저 무슨 일 하면 좋겠어요?”
“아이고, 네 인생 네가 살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나도 내 인생 잘 못 살아서 지금 이렇게 헤매는데 내가 남의 인생에 어찌 간섭하겠냐? 공부 많이 한 네가 잘 알지. 엄마는 모른다, 그런 거.”
이렇게 정을 딱 끊어 버려야 해요.
“아들이 나이가 마흔인데도 결혼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식이 결혼을 못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이 문제도 부모가 나서서 자식이 연애할 기회를 막아 버려서 그렇습니다. 사춘기 때 이성도 사귀어 보고, 실패도 하고, 가슴앓이도 해야 연애도 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막아 버리니까 사람 사귈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그러고 나이 들어서는 자꾸 사귀라고 강요를 합니다.


자식이 연애 할 줄을 모르니까, 결국 짝 맞춰 결혼 시키는 것도 부모의 책임으로 돌아와요. 중고등학교 때 이성 친구를 사귀어 보면 나중에도 자기가 알아서 맞춰 오니까 부모는 허락만 해주면 됩니다. 부모가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어요. 결국 자녀의 결혼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도 다 부모가 지은 거예요.


자녀의 입장에서는 자립할 시기에 부모가 막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부모가 책임져라’ 하는 심리가 있어요. 그래서 부모가 아무리 도와줘도 고마움이 없고 원망만 있습니다. 이것은 자식과 부모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에요. 이런 일을 자업자득이라고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 잘되라고 그리 했는데 결과가 기대하던 게 아니라서 억울하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의 탓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나이 들도록 결혼 안 하는 아들을 장가보내는 것은 간단합니다. 집에서 내보내 버리면 돼요. 엄마가 밥해 주고 빨래 해주고 뒤치다꺼리 다 해주니까 아쉬운 게 없어요. 성적인 문제 빼고는 엄마가 다 해주니까 장가갈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무조건 쫓아내는 게 제일이에요. 그래서 밥을 사 먹든지 이불 빨래를 못해서 지저분하든지 해도 절대로 도와주면 안 돼요. 그러다 보면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눈도 조금 낮아집니다.

 

지금은 엄마가 다 해주고 특별히 아쉬운 게 없으니까 웬만한 여자는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캥거루족인데, 다름 아닌 엄마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엄마가 세상 떠나면 금방 장가갑니다. 딸도 스무 살 넘으면 무조건 집에서 쫓아내는 게 제일이에요.

가능하면 돈은 안 주는 것이 좋고, 돈을 주더라도 최소한의 액수만, 그것도 빌려 줘야 자립심이 생깁니다.

그렇게 자생력을 키워 주는 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에요. 그런데 정신적인 유산은 주지 못하고, 물질적인 재산 때문에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말다 하면서 힘들어하기에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그 뒤로 카드 독촉장이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갚아 주다가 화가 나 안 갚아 줬는데, 취직도 안 되는 거 같고 신용불량자가 될까 봐 겁이 납니다.”
이렇게 상담을 해온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디 가서 막노동을 하든 뭘 하든 자기 인생 자기가 살도록 놔둬야 하는데 자식이 좀 힘들어한다고 “그런 회사 다닐 필요 없다, 내려와라” 하니까 부모에게 의지하고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거예요.

만약 성인이 된 자식이 손을 벌리면 “빌려 주긴 하겠지만 그럼 몇 퍼센트씩 갚을래?” 하고 차용증을 쓰고 빌려 주든지 해서 어른으로 대해야 합니다. 엄마부터 자식을 어른으로 대우해야 자식이 어른 되는 거예요. 세상 사람이 대우해 주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어른으로 대해야 자식이 잘됩니다.


자식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면 걱정할 게 전혀 없어요. 이것저것 챙기고 간섭하려니까 힘들고 도와주려니 그것도 걱정이죠. 간섭도 하지 말고 도와주지도 말아야 해요. 정을 딱 끊는 게 제일 좋아요. 그리고 자식을 도와주려는 마음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결국 카드 빚 갚아 준 것도 자식이 안쓰러워 준 거잖아요. 그러니까 괴로운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쓴 것이지, 자식을 위해서 쓴 게 아니에요. 그걸 착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 자식을 위해서 준 게 아니라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아파서 준 것이기 때문에 자식의 인생에는 전혀 도움이 안 돼요. 이러다 보면 나중에는 자식과 원수가 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주었으면서 “너를 위해서 줬다.” 이렇게 말하면 서로 원수가 될 수밖에 없지요. 이런 경우는 집안이 살 만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엄마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돈을 대줄 수밖에 없으니, 자식을 정말 잘 키우려면 재산이 없어야 해요. 그러면 자식은 금방 자기 살 길 찾고 강해집니다.


부모가 셋집에서 밥만 먹고 살면 자식이 집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할 게 없으니까 당장 무슨 일이든지 합니다. 그런데 이 부모는 냉정하게 결단을 못 내려요. 자식을 위해서는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는데 실천을 못합니다. 부모가 가진 게 있으니까 자식은 자꾸 거기에 기대려 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길이 없는 게 아니라 부모가 못 하기 때문에 풀 수 없는 거예요. 지금 자식에게 더 이상 돈을 주지 않고 딱 끊는다 해도 자식이 죽는다 하면 또 줄 수밖에 없잖아요. 이게 바로 부모의 딜레마예요.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는데 엄마가 자꾸 신경을 쓰면 의지하게 되고, 엄마가 앉아서 굶어죽을 정도가 되면 자식들이 다 알아서 엄마를 먹여 살립니다. 집안이 망했을 때 남편만 믿고 “우리 가족은 당신만 믿고 삽니다” 하고 바짓가랑이 잡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남편이 막노동을 하든 뭘 하든 다 먹여 살려요.

이때 남편에게 “에잇, 당신은 앉아 있어요. 제가 나가 돈 벌어올게요.” 이러면 평생 아내에게 의지하게 되는 거예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겠다고 정하면, 그렇게 해서 굶을 각오를 해야 하고, 내가 애들을 죽을 때까지 뒷받침하려면 본인이 나가서 돈을 벌어서 지원해야 합니다.

자식들이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대학 들어간 후에는 학자금을 벌든 안 벌든 지원을 끊으면 돼요. 그러면 자식들이 다 알아서 꾸려 나갑니다. 스무 살 넘으면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하고 내 자식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래서 지원도 하지 말고 간섭도 안 해야 합니다.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해요. 그런데 다 큰 자식에게 늘 이런저런 간섭을 하고 조바심을 내서 묶어 두려 합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스무 살이 된 대학생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자식들이 나가서 산다고 하면 못 나가게 하잖아요.
“편한 집 놔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해.”
이러다 보니 부모가 자식을 평생 동안 책임지고 살게 되는 거예요. 스무 살이 되면 정을 완전히 끊어 줘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식을 지혜롭게 사랑하는 거예요. 따라서 대학에 진학하면 학비를 대주지 말고, 스스로 융자를 받게 하고 졸업하면 갚도록 해야 합니다. 도저히 안 되면 무이자로 차용증을 써서 빌려 주고 직장에 다니면서 갚도록 하는 게 좋아요. 이것이야말로 성년이 된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고 성장시키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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