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기는 멧세지

가장 먼 여행 - 신영복

거울닦는 달팽이 2012. 9. 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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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공부(工夫)이고, 공부가 곧 삶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하여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자연, 사회, 역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계인식과 자기성찰이 공부입니다. 교육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인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공부한 것...

이 고전입니다. 그리고 공부는 대체로 고전공부에서 시작합니다. 고전은 인류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보편적인 지적 유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 유산은 역사와 소통하고 동시대와 소통하기 위해서 마치 언어를 익히듯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부는 또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토대가 됩니다. 미래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고전공부는 고전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이러한 지적 유산을 재구성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공부라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고전독서는 먼저 텍스트(text)를 읽고, 그 텍스트의 필자(筆者)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讀者) 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창조라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文脈)을 뛰어넘는 탈 문맥의 창조적 실천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문맥을 뛰어넘는 탈 문맥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성(cool head)보다 가슴(warm heart)을 키우는 일입니다. 가슴은 세계를 조직하고 진리를 조직합니다. 그리고 인식과 실천의 전 과정을 감당하게 하는 애정(愛情)으로 작동합니다.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주체와 진리를 해체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변화입니다. 발은 공존과 관용(tolerance)을 뛰어 넘는 소통과 변화이며 탈주(desertion)와 유목주의(nomadism)입니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존재론적 패러다임으로부터 관계론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존재(存在)에서 관계(關係)로 나아가는 것이며, 관용(寬容)에서 변화(變化)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와 변화의 실천적 주체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이고 소수자(minority)라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주변부(周邊部)의 창조적 공간에서 소수자의 후(後) 사건적(事件的) 실천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처럼 먼 길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정 그 자체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길'의 정서를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자유(自由)의 여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심(良心)과 자부심(自負心)에 의하여 전 과정이 지탱되어야 합니다. 양심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부심은 자기의 삶에 대한 애정입니다. 그러기에 먼 길은 '여럿이 함께'해야 합니다. 나의 아픔이 수많은 아픔들의 한 조각임을 깨닫고, 나의 기쁨이 다른 누군가의 기쁨의 한 조각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의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먼 길을 함께가는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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