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생명 평화의 길을 묻다-정양모 신부 즉문즉설(1)

거울닦는 달팽이 2008. 12. 2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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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관과 너무나 비슷한 글이다..
나 또한  카톨릭신자이지만 10여년 넘게 신앙생활하면서,

여러 독서끝에 종교 다원주의적인 성향을 띄게 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불교에 많이 매료되었던 점도, 다석 유영모선생에 반한 것두.....

카톨릭에 이런 신부님이 계시다는 것..

너무 감사하다..^^

 

여러 강이 흘러 하나의 바다로 들어가듯,

그 강줄기 하나 하나를 두고 바다로 가는 길이 맞다, 아니다라고는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신에게 적합한 길이 있을 뿐...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공간과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영향에 따라 신앙을 갖게 되는 것뿐이고..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엄청난 지식과 정보들을 통해, 

과거와 달리 공간적, 역사적 제약을 뛰어넘어,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갖게 되는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만 한다면,

특정 종교에 이단이다 아니다라고 하는 논쟁만큼 쓰잘데기 없는 것은 없다싶다..

 

카톨릭과 불교가 포용력이 넓은 점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라 생각된다.






 

 

 




지난 1127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 강당에서 생명평화결사가 마련한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란 주제의 다섯번째 즉문즉설에 정양모(72) 신부가 나섰다. 프랑스 리옹가톨릭대를 졸업하고, 독일서 박사학위를 박은 뒤 1971년부터 광주 가톨릭대, 서강대, 성공회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정 신부는 한국 가톨릭계의 대표적인 진보신학자.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다석 유영모(1890~1981)를 기리는 다석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를 비판한 저서 <한국 가톨릭교회 이대로 좋은가>(1998)로 주교회의로부터 주교회의 발행 간행물에 글을 실을 수 없도록 하는 제재를 받고 있다. 이날 100여명의 청중들은 민감한 신학적 사안에 대해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사회를 본 생명평화결사 공동체 황대권 위원장의 첫 질문은  ‘왜 예수는 재림하지 않는가’였다. 정 신부의 답변도 거침이 없었다.
 
예수님 기다린지 2천년, 어떻게 된 일인가?
 
-지금은 가톨릭 절기로 대림절(성탄절 전 4주간)이다.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주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주님이 오지 않은 지 2천년이 흘렀다. 어떻게 된 일인가?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기독인들에겐 2천년 전에 이미 왔다. 그분은 부활해 승천했고,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는다. 대림신앙은 성서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신약성경 27  전서가 가장 많이 쓰인 시기는 서기 50년쯤이다. 예수님이 세상을 뜬 지 20년 만에 쓰인 것에 재림신앙이 분명히 들어 있다. 우선 ‘마태복음 10장’ 제자들을 둘씩 이스라엘 각지로 파견하면서 이스라엘을 두 바퀴 돌기 전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온세계를 누비고 있는 지금까지도 온다는 하느님의 나라는 오지를 않는다. 파리 가톨릭대 알프레드 노하지는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나님의 나라는 안오고 생각지도 않은 교회가 태어났다’고 해서 교황 비오 10세한테 사제직, 교수직, 신자직까지 박탈당했다. 마가복음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하느님 나라가 힘차게 도래할 때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고, 마르코 복음 13장에선 이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이 모든 종말 사건이 도래하리라고 했다. 예수시대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으나 종말도 예수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종말이 임박했다는 임박신앙은 사도들이 처음으로 한 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주지를 시켰다. 한 세대 안에 역사가 종말을 고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리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이장림 목사가 160개 교회 선동해서 한국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설친 적이 있다.
 
‘온다던 하느님은 안 오고 교회만 태어났다’고 해 사제직 박탈
 
제자들이 공연히 들떠 재림하리라고 보았으리라는 것은 그렇다 치고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말한 것은 어찌해야 하느냐. 당시엔 예수님도 정보가 없었지만 사도들도 정보가 없었다. 재림신앙을 서술할 적에 정보가 없으니 당시 신약성서가 쓰여 지기 2백년 전부터 백년 후까지 이스라엘에서 풍미된 묵시문학, 즉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다루는 문학이 성서 속에 들어왔다. 성서 속엔 그리스도 신앙의 정수가 있는가 하면 당시 문학사조가 들어 있다. 이런 것을 구분 못하면 다미선교회처럼 160개 교회에서 한밤중에 모두 흰옷 입고 하늘을 쳐다보며 자정까지 예수가 한국땅에 재림한다고 카운트다운을 하게 된다. 10초전, 9초전, 8초전, 7초전…. 그런데 자정이 됐는데도 온다는 예수님은 안 오고 형광등만 번쩍이고 있었다. 다미선교회 이장림목사가 휴거가 온다고 신도의 돈 34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징역살이를 했다. 요즘 다시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종말 임박설에 현혹돼 예수님이 곧 재림한다고 믿는 개신교인들이 20만명이나 된다고 들었다.
 
가톨릭의 대림절은 기다림의 계절이고, 희망을 되새기는 계절이다. 이승의 삶이 다할 적에도 절망이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희망이 전개된다. 이게 종교인들의 염원이다.
 
현재는 성령의 시대로, 이미 천국이 여기 임해 있다는데…
 
-개신교신자다. 현재는 성령의 시대로, 예수님의 세계가 이미 (성령으로) 임했다고 보는 게 많은 기독교 교인들의 시각이라고 들었다. 이미 천국이 여기 임해 있다는 것이다. 성령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육체를 지니고 나날이 살아가고 있다. 내 목숨이 다하면 신령한 영체로 변해 창조주와 주님을 뵈러가고, 먼저 간 조상님들과 선배님들을 뵈러간다고 본다. 매년 연말이 되면 창조주 하느님과 예수님께 인사드리고 나서. 이승에서 깊게 인연을 맺은 사람이 30명 정도다. 내가 죽으면 나의 영체를 추수해 가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는가. 그게 나의 재림이 되겠지. 내가 간다든가 온다고 하는 것은 우리세상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죽으면 시공간을 넘어서는 것일 게다. 요한일서 사장 팔절엔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이시라고 한다. 비정한 세상에서 사랑에 젖을려고 애를 써야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것 아니냐
 
성령은 성서에 수도 없이 나온다. 기독교에선 삼위일체 교리가 있다. 성부도 하느님, 예수도 하느님, 성령도 하느님이라고 하니 삼신교 아니냐고 한다. 구약의 유일신교를 물려받아서 삼신교가 아니고 유일신교다. 그러나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이고,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는 게 삼위일체다. ()로선 셋이지만 체()로선 하나라는 것이다. 고도의 추상적인 그리스철학 개념이다. 여러분도 상식선에서 경험선상으로 똑부러지게 설명할 분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교리 만든 이들은 그리스 주교들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교리니 믿으라고 하니 믿겠다면 모르겠지만 위와 체가 납득이 되어야 할 게 아닌가. 따라서 한마디로 빈말이다.
 
예수도 하느님, 성령도 하느님이라는 언질 없다
 
이제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얘기해 보자만, 하느님은 영원무궁하신 분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법신불이다. 그 하느님을 깊이 깊이 체험하고 맑게 맑게 드러낸 분이 예수님이다, 불교식이라면 응신불, 보신불이다. 그래서 예수도 하느님이다. 두 번째 하느님이다. 325년 니케아 호숫가에 모인 지중해 주교 300명이 석달 동안 토의한 뒤 투표로 그렇게 결정했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신앙에 중지가 모아졌다. 성부는 원래부터 하나님이고. 성령이 또 뭐냐. 이래 가지고 갑론을박 중구난방. 백가쟁명했다. 당시엔 로마황제가 교회 수장이었다. 황제가 주재하고 황제가 결말지었다. 황제들은 이념 통일을 굉장히 좋아한다. 궁전 맞은편 성당에 지중해 주교들 다 집결시켜 거기서 투표로 성령도 하느님으로 했다. 382년 이레네대성당에서 성령도 하느님이라는 교리가 결정됐다. 삼위일체 교리의 근거 경전은 요한복음이다. 삼위일체를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었다. 전체 다른 곳엔 예수도 하느님, 성령도 하느님이라는 그런 언질이 없다. 구약이고 신약이고 요한복음을 제외하고는 성령에 대한 언표는 비교적 간단하다. 성령은 거룩한 기운이고, 거룩한 작용이고, 부활한 예수님의 기운이기도 하다. 단전호흡이나 기공하신 분들은 우주는 기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선한 기가 있고, 악한 기가 있는 거다. 선한 기는 축적하고 악한 기는 피해야 한다고 본다. 성령은 동양식으로는 선한 기운이다. 정기나 양기다.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예수가 보낸 거룩한 기운이다.
 
이런 거룩한 기운을 삼위일체 교리에선 인격화한 것이다. 그런 현상을 유대교에선 율법을 인격화하고, 지혜와 말씀을 인격화했다.
 

 


‘오직 예수’라면 편협한 것 아닌가?
 
-불교의 <육조단경>엔 나라는 생각이 죄의 근원이라고 했다. 기독교의 원죄와 같은 뜻 아닌가. ‘오직 예수’라면 편협한 것 아닌가?
=원죄교리란 아담이 따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먹는 바람에 아담이 벌을 받고, 온 인류가 죄에 연루되고, 죄의 결과로 죽음을 맞보게 됐다는 것이다. 진화론 입장에 따르다 보면 절반은 사람, 절반은 원숭이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로 나타난다. 그러니 원죄교리란 한마디로 전설을 넘어서 신화의 세계다. 우리 큰 할아버지가 과일 하나 따먹었다고 영영세세 죄를 뒤집어쓰는 게 납득이 가는가. 불과 100년 전엔 상당히 납득이 됐다. 옛날엔 조상 하나가 공을 세우면 사돈네 팔촌까지 잘 됐다. 그리고 단종을 다시 세우려다가 세조에게 발각된 성삼문으로 인해 창녕 성씨는 씨족이 멸족되다시피했다. 그 때는 조상 하나가 걸려들면 일족이 벌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개성의 시대다. 달라졌다. 아버지가 잘못했으면 아버지가 벌 받고, 자식은 괜찮다. 옛날에는 아담 이후 첫번째 조상이 잘못했으니 온 인류가 화를 당하고, 두 번째 조상 예수가 잘해서 온 인류가 구원받는다. 그것이 옛날엔 이해되는 때였다. 그러나 개성의 시대가 되면서 점점 이해가 안 되게 됐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부처님 코스, 공자님 코스, 무하마드 코스가 있다
 
우리는 무균상태에서 무균세상에 태어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는 역사에 축적된 죄악이 창궐한 것이다. 아주 혼탁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로마서 5장에서 바올이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아담의 죄 때문에 온 인류가 불행한 것을 새아담이 수복시켜 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바오로는 환한 빛에 휩싸인 예수님을 뵈었다. 그래서 예수의 빛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예수 이전의 세계와 예수 밖의 세계를 새까맣게 그렸다. 카라바지오가 개발한 새로운 회화 기법이 명암대비법이다.
 
그 이전엔 배경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서 그렸다. 그러나 명암대비법에선 배경을 새까맣게 칠해버린다. 예전에 배경과 함께 인물을 보던 사람들이 새까만 배경 가운데 환환 빛에 싸여 나타난 두상을 볼 때에 그림에서 뭔가 튕겨져 나오는 것처럼 느낀다. 바오로는 그렇게 예수 이전과 밖은 비구원으로 대비시켰다.
 
오직 예수’라는 것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너무 존경스러워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옆을 잠깐만 돌아보면 공자님도, 부처님도, 마호멧도, 짜라투스트라도 있다. 하느님의 신비나, 불교의 공이나 진여는 겉잡을 수 없는 세계 아니겠는가. 저 높은 정상에 있다고 하면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많은 것이다. 부처님 코스, 공자님 코스, 무하마드 코스가 있다. 나는 예수 코스를 따르고 있다. 다른 코스를 모르다보니 예수 코스만이 너무너무 좋다. 각자 자기 코스밖에 안보이니까 오직 예수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선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아주 좋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불자들도 만나고, 유생들도 만나야 하니 생각이 넓어져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참 삶, 하느님이고 진여이고, 공이다. 참삶에 이르는 길은 예수다. 그게 예수 코스다.
 
석가코스는 난코스, 거기 입문 않은 건 큰 복락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늘 고민해 왔다. 한 사람이 똑바로 사는 데 있어서 예수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 예수를 신격화시켜 가랑이 찢어지게 따라가도 따라갈 수 없게 한 것 아닌가.
=어느 분이 세례 받고 소감을 물으니, 오늘부터 빌 데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예수 제대로 믿으면 40살을 못 넘길 것인데 이렇게 70이 넘도록 말짱하게 살아가고 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석가코스는 난코스다. 석가코스는 자력으로 성불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공부한다는데 저 공부에 끝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거기에 입문하지 않은 것을 큰 복락으로 여긴다. 큰스님들이 자력성불을 외쳐도, 절대다수 불자들은 의타신앙을 가져서 입시철이 되면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 앞에서 추운 겨울에도 이부자리 가지고 가서 백일기도 한다. 큰스님들이 아무리 해봐야 의존적인 인간의 속성이 어디 가느냐. 의타적인 신앙이 인류보편적인 신앙행태 아닌가.
 
700~800년전 일본의 신란은 정토진종을 만들었다. 아미타불을 열심히 찾으라는 것이었다. 불교의 도도한 흐름과는 정반대인 것 같은데, 이것도 일본에서는 불교로 받아들인다. 기독교에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교의 폭은 넓다. 정반대의 교설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전세계 교단에서 이런 데가 어디 있겠느냐. 
 
가장 편협한 사람들은 종교인…개신교는 갈기갈기 찢어 세포분열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고, 성서 해석을 둘러싸고 교단과 부딪혔을 때 심정은?
=프랑스에서 학부를 마치고 독일 가서 공부하고, 나중에 이스라엘 가서 성서 살펴보다 보니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가 배운 것은 역사비평과 해석학이다. 역사비평은 과거를 따지는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기록이 됐는가. 그 후 2천년 간 해석의 역사가 있지 않은가. 해석학은 현재성이다. 자기들 구미에 맞게 쓴 경전을 오늘날 이땅에서 살아가는 동방인이 어떻게 새길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내가 언제까지 무사할 것인가, 결국 당하지 않겠느냐고 사람들이 그랬다. 정치인들도 편협하지만 가장 편협한 사람들은 종교인이다. 나는 가톨릭 내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사는 편인데, 이제 교회 어른들과 신앙이 여리신 분들. 전통 신앙을 고수하시는 분들이 저 때문에 고생한다. 서로서로 고생이다.
 
여기저기서 쫓겨나고, 어느 누가 교황청에 고발해서 지금도 처벌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가톨릭에선 처벌이라는 게 이상하다. 교황청에서 서울에 와 있는 교황대사에게 지시하고, 다시 주교회의 의장에게 지시해 11년 전인 1997년 처벌을 내렸다. 그러나 처벌 통보는 안해준다. 언론에는 대외비다. 나는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주교들은 알려질까봐 쉬쉬한다. 가톨릭에서 사상의 자유를 통제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처벌이라는 게 우스운 꼴이다. 주교관 산하 기관이 천주교중앙협의회 거기에서 내는 단행본이나 잡지에선 처벌된 세사람 글은 무기한 싣지 못하도록 했다. 11년째다 거기에서 나오는 유인물엔 전혀 실리지 않는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처벌 받은 상태로 죽는 것이다. 나는 시신을 의과대사에 맡길 것이니 육신이야 상관없다.
 
전통신앙인들이 볼 때는 내가 귀국한 1970부터 38년간 한국 천주교에서 많이 참아주는 편이다. 그래서 잘 하면 쫓겨나지 않고 천주교 안에서 종생할 수 있겠구나고 생각한다. 쫓겨나기 전에 내 스스로는 안나간다. 쫓으면 나갈 것이다. (교리에 대한 진보적 주장에 대해) 불교는 관용적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갈기갈기 찢는다. 그래서 끊임 없이 세포분열을 한다. 수틀리면 하나 세운다. 어느 누구도 수습을 못한다. 그게 개신교의 실태다. 개신교 기장(기독교장로회)은 이해심이 많은 편이다. 그와 함께 타종교나 교파에 대해 이해심이 많다는 감리교에서조차 제 친구 변선환 (감신대) 학장을 내쫓고 홍정수 교수도 내쫓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개방적인 계파 둘 중 하나라는 감리교가 그렇다. 가장 최고의 학자 둘을 삼중(목사직·교수직·신자직) 박탈했다. 내가 개신교에서 있었으면 변선환 학장과 홍정수 교수보다 먼저 잘렸으면 잘렸지 뒤에 잘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에 있어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에 대해 하루에 세 번씩 주님께 감사하고 있다.
 
유영모 책 보고 전기 통해…오직 혼자서 생각하고 제 소리, 제 얘기 해
 
-얼마나 다석 유영모에게 감동받았기에 다석학회까지 만들어 이끄나.
=다석은 1982년 돌아가셨는데, 내게 누구도 그런 분이 계시다는 것을 얘기해준 적이 없다. 그래서 그 분을 생전에 뵙지 못했다. 그런데 유달영 선생님이 여의도 63빌딩 옆 라이프빌딩 13층 성천문화재단에서 동서고전 강좌를 개설해 한국에서 가장 출중한 강사들에게 강의를 시켰다. 그 때 12명 중 11명의 강사를 구했는데 성서를 강의할 사람을 못구했다. 유달영 선생님은 신부는 너무 고루할 것 같아 양심적인 목사를 모시고 싶은데, 아무리 양심적인 목사라도 ‘예수 안 믿으면 무간지옥이다’라고 할 것이니 그런 사람들을 강사로 모시기 어려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유달영 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구상 시인이 나를 소개했다. ‘정양모 신부는 성당 안다니면 지옥 간다는 몰상식한 얘기를 안할 것’이라며 소개했다고 한다. 류달영 선생은 학기가 끝날 때 수강생들에게 강사 평하게 해 매학기 인기가 없는 강사는 하나둘씩 퇴출시켰는데 나는 유일하게 11년간 안 쫓겨나고 강의를 했다.
 
내 강의엔 유달영 선생도 빠지지 않고 늘 참석했다. 강의 쉬는 시간에 유달영 선생님 서재에 가서 쉬곤 했는데, 서재에 다석 유영모 책이 있었다. 그 책을 보니 전기가 통했다. 다석은 15살부터 종로5가의 연동교회 7년 나간 뒤 평생 교회엔 발을 끊었다
 
4천명 신부중 신학적 얘기 나눌 분 거의 없어
 
그가 왜 교회에 발을 끊었는가. 첫째 목사들이 성경 풀이하는 게 맘에 안들었다. 톨스토이가 요약복음서라고 새로 만든 것을 읽어보고 성경이면 다 성경이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는 불경도 꽤 많이 읽었다. 그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저녁 8시에 잘 때까지 새벽에 성경 불경 도덕경 많이 안 읽고 몇 줄 읽고, 아침 점심 굶고 저녁만 먹고, 풀 뽑고, 전지하고, 성경과 경전 구절들을 하루 종일 골똘히 생각하고 보통 하루에 한시 하나씩 썼다. 생각이 많이 용솟음칠 때는 몇 개도 썼지만 대개 하루에 시 한 수를 썼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석에 대해 영양분이 많은 암탉 같다고 했다. 하루에 알 하나씩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에겐 참고서도, (살아있는) 스승도 없었다. 오직 혼자서 골똘히 생각했다. 잘못 생각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스승이나 목사나 신부의 영향을 안 받고, 이게 무슨 뜻일까. 제 생각, 제 소리, 제 얘기를 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수 없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내놓았다.
 
다석은 하느님, 예수님, 진리에 대해 서양물을 먹지 않았다. 나만 해도 파리에서 독일에서 예루살렘에서 공부할 때 내 선생들은 전부 서양물이 든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굉장히 서양물을 많이 먹은 것이다. 개신교 신학자들 가운데 안병무 선생님과 20년간 친교 나누었는데, 가끔 서양사람들에 대해 반감이 심했다. 서양학자의 주장이라면 일단 반대하고 보았다. 왜 그렇게 반동적인 입장을 취하느냐고 했더니 서양 신학 조류가 얼마나 맹렬히 흐르는지 내가 안 떠밀리려고 전력을 다해도 떠밀려간다면서 그렇게 해야 내 주체성이 조금씩 생긴다고 했다. 그런데 내 학설은 평생 서양사람들 주장으로 꽉 차있다. 그런데 서양물 눈꼽만큼도 안 먹고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을 천주교에선 아무리 눈을 닦고 봐도 없다. 4천명 신부중 신학적 얘기 나눌 분이 거의 없다. 개신교에서 변선환, 안병무와 얘기를 했는데 천주교에선 서공석 신부 정도다.
 
내식으로 동양식으로 이해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차 이를 골똘히 생각하신 분이 있어서 내가 딱 꼬꾸라졌다.(계속)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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