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스크랩] 노무현의 추억

거울닦는 달팽이 2009. 5. 2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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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종일 충격으로 우울했습니다.

누가 어머니를 봐 준다면 당장 봉하 마을로 조문을 가고 싶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 명도의 길

너무 외롭지 않기를 빕니다.

 

재벌과 권력자에 맞서 적수공권으로 으르렁대던 그 모습이 그립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틈새에서 참 외로운 대통령이었습니다.

좌충우돌 하던 그 기백 속에 엿보이던 

그의 외로움이 가슴 저밉니다.

그의 삶의 여정은

단 한번도 고요한 순간이 없었습니다.

죽음으로서만 얻을 수 있었나 봅니다.

가슴을 채우는

이 침묵 덩어리.

 

늘 포위당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정적과 언론과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양자에게 까지.

 

88년 무더웠던 어느 날 밤

마산 가톨릭센터에서 노무현을 만났습니다.

좌담회였습니다.

1계급 특진과 현상금이 걸린 저를 포함한

수배자가 여럿 있었던 그 장소를 경찰들이 새까많게 건물을 에워쌌고

뒤늦게 우린 눈치를 챘지만 독 안에 든 쥐였습니다.

지랄탄으로 유리창을 다 두드려 깨고

최루가스가 자욱한 건물로 백골단이 군홧발로 쳐 들어와

참석자를 다 닭장차에 태워버렸습니다.

온 몸을 얻어맞아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이제 몇 년 감방에서 썩는구나 싶었는데

닭장차는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노무현이 닭장차 밑으로 들어가 있었던 겁니다.

명백한 불법이라는 겁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불법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모습을 

용납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법법자를 잡겠다는 자들이 도리어 범법자가 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으로서 도저히 눈 감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찰서장이 나오고 도경에서 누가 나오고 했습니다.

노무현은 단 한가지를 주장했습니다.

수배자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을 다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적법하게 법을 집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범법자를 비호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풀려났습니다.

그러자 노무현은 떠났습니다.

상의가 찢기고 넥타이는 다 풀어지고.

바짓가랑이는 흙 투성이고.

그런 모습으로 노무현은 씩씩대며 우리 시야를 벗어났습니다.

 

두번째 만난 것은 '바보 노무현' 때였습니다.

지역주의 타파한다고 설치면서

당선이 보장된 선거구를 놔 두고 설치다 국회의원 뱃지 놓치고 지방자치 연구소 소장인가 뭔가 할 때였습니다.

모셔다가 강의를 들었는데

국회의원 못 되고 쉬는 것이 얼마나 큰 배움의 기회가 되고 있는지를 말했습니다.

 

이제 다 옛날 얘기입니다.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비난과 저주의 언사를 버리고 관용과 격려의 말을 쓰기를 바랍니다.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각자가 큰 깨우침 있기를 바랍니다.

외로운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웃이 생기고 고락을 같이 하는 친구가 생기기를 빕니다.

 

노무현의 흔적 하나 남깁니다.

 

 

고정희 시인이 떠 오릅니다,...

 

*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출처 : 主式會社 드림
글쓴이 : 목암(牧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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