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펌)영웅에 관하여..

거울닦는 달팽이 2009. 5. 2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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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로즈님이 퍼 주신, 노대통령님과 관련된 글이다.

진정한 우리 시대의 영웅,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 홀로 외롭게 싸우는 영웅이 되지 않게,

함께 하자는 각오의 글이었는데..ㅠ.ㅠ

당신은 결국 홀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고 먼 길을 떠났다...ㅠ.ㅠ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으랴...

그 두려운 죽음의 경계선을 넘으실 때의 심정은 어떠했으리..ㅠ.ㅠ

 

한 알의 밀알, 십자가 희생양이 되시길 선택하신 당신..

당신의 죽음은 대한민국 국민정신의 새 생명으로 부활할 것입니다..ㅠ.ㅠ   

 

당신과 동시대를 살 수 있었던 인연,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ㅠ.ㅠ 

 

할 바를 다한 당신... 

이제 그곳에서 편히 쉬소서.. 

그곳에서 우리의 사랑을 느끼시길 바래요..ㅠ.ㅠ  

 


 

 영웅에 관하여...
(서프라이즈 / 평화아빠 / 2009-05-10)


최근 이성을 상실한 쥐박이 정권과 광기에 휩싸인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보면서 정말 우리 노대통령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더욱 절감하게 되는 건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을 보고 있자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어 서팡들과 좀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란 조각으로 너무나 잘 아는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의 또 하나의 걸작인 ‘칼레의 시민’이라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작품의 역사적 배경 : 백년전쟁 ****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가 죽었을 때 잉글랜드의 왕인 에드워드 3세는 샤를 4세에게 아들이 없고 자신이 어머니 이사벨라가 샤를 4세의 누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에게 프랑스 왕위의 승계권이 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에 맞서 프랑스 왕 필리프 3세의 손자인 발루아 백작도 자신의 왕위 상속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게 됩니다.

프랑스 의회는 발루아 백작의 왕위 계승을 결정하고(이에 따라 발루아 백작이 필리프 6세가 됨)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도 이를 수용합니다. 그러나 이후 1337년에 이르러 필리프 6세는 프랑스 영토 내에 있던 기옌 영지를 몰수합니다.

잉글랜드의 왕인 에드워드 3세는 기옌의 공작으로서 이 영토는 에드워드 3세의 영토로 인정받던 지역이었습니다. 이에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에 대한 왕위 계승권을 다시 주장하게 되고 전쟁을 선포하여 프랑스로 군대를 보내 이름하여 백년전쟁(1338~1453)이 시작됩니다.

전쟁 초반 에드워드 3세의 잉글랜드 군대가 승승장구하였으며 1349년 9월 잉글랜드 군대는 프랑스 북부의 칼레시를 포위하게 됩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전투 형태라고 하네요. 이름하여 공성전..

칼레시는 이듬해 여름까지 11개월간이나 저항하였으나 결국 항복하게 됩니다. 칼레시의 항복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시민이 처형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합니다.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던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의 조건을 내놓습니다.

“좋다. 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이 어리석은 저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들 중 시민 대표 6명이 나서서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잉글랜드 진영으로 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교수형을 받기를 감수한다면 나머지 시민들과 도시를 살려주겠다.”

칼레의 시민들은 끝내 항복하게 됐다는 패배감과 그럼에도 대다수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 그러나 이를 위해서 자신들 가운데 여섯 명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불안감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이때 이 도시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피에르’라는 사람이 먼저 죽기를 자처하고 나섭니다. 서로 죽기 싫어 제비를 뽑는다든지 희생자를 지명하는 것은 도시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패했지만, 적 앞에 당당하게, 후손 앞에 떳떳하게 나섬으로써 도시와 민족의 자존심만큼은 살리고 싶었던 것이라 합니다.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칼레의 시장, 법률가, 상인 등 도시의 귀족들이 하나 둘 묵묵히 자원합니다. 그럼으로써 6명의 시민대표는 모두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지원자는 일곱 명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서로 도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습니다.

이에 위스타슈는 “내일 아침 광장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의합니다. 모두 이에 동의했고 고통과 고뇌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광장에는 위스타슈를 제외한 여섯 명만이 모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나왔을 법한 위스타슈만 빼고..

위스타슈가 전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는 죽음을 자원한 나머지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자처한 6명은 비장하게 에드워드 3세 앞에 나아갔고 모두 처형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그러나 이 소식에 감동한 왕비의 간청으로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사면하게 됩니다.

 

**** 걸작의 탄생 : 칼레의 시민 ****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84년, 칼레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한 작품을 로댕에게 부탁했고 로댕은 11년간의 작업 끝에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칼레시가 기대했던 영웅의 모습이 아닌 고뇌에 찬 인간의 모습이어서 칼레시는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댕은 앞줄 중앙의 위스타슈를 지도자다운 덕성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긴 머리와 수염으로 가부장적 위엄을 풍기는 위스타슈는 약간 고개를 숙여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그의 곁에 그처럼 묵묵히 걷고 있는 사람이 장 데르라는 법률가입니다. 법률가답게 장 데르는 악 다문 입과 빳빳한 걸음으로 마치 선돌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위스타슈, 장 데르와 함께 앞줄에 서 있는 피에르 드 위상은 두 사람에 비해 다소 감상적이지만 역시 의연한 모습입니다.
 
뒷줄의 나머지 세 사람은 앞줄의 사람들에 비해 자신감이나 확신이 많이 떨어져 보입니다. 그들은 지극히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는 듯하며 어쩌면 자신들의 결단을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눈앞의 죽음에 깊이 몰입해 다른 생각일랑 아예 가질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특히 머리를 손으로 쥐어 싸고 있는 앙드리외 당드레(오른쪽 사진)는 ‘우는 시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괴로움은 그 어떤 위로로도 해소될 수 없으며 아이러니컬하게 죽음만이 그 고통과 공포를 끝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곧 세계의 종말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명제를 웅변하는 듯합니다. 

**** 로댕의 철학 : 영웅이란 누구인가? ****

영웅은 흔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없는 존재처럼 찬미되곤 합니다. 그러나 애당초 그런 두려움과 공포를 모르는 존재라면 우리는 그들을 그리 존경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그렇게 타고났다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영웅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며 그들도 죽음을 적잖이 두려워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두려움과 끝까지 싸운 끝에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진정한 영웅인 것입니다. 근대 서양미술사상 최고의 조각가로 꼽히는 로댕이 ‘칼레의 시민’을 만들 때 염두에 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합니다.

주제에 대한 로댕의 독창적 접근은 여섯 명의 군상을 서로 비슷하게 무리를 이뤄 같은 높이에 서 있게 만든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전까지 이런 기념조각은 무리 중 대표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구도로 웅장하게 빚어지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웅들은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것은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는 존재들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로댕은 기왕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철저히 파괴하여 집중이 아니라 확산, 수직이 아니라 수평, 외침이 아니라 침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죽음의 극심한 공포에 떨면서도 동시에 죽음에 맞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그들의 처연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이야말로 진정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영웅들임을 생생히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의 영광스러운 시민들이 잉글그랜드 왕의 막사 앞에 나섰을 때 보였으리라 생각한 그런 모습이 절대 아니다. 그 죄인 같은 모습은 우리의 기대와 정반대이다. 인물들의 윤곽은 우아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요구한 것과 거리가 멀다. 작가는 바닥면의 높이에 차이를 두어 인물 윤곽 사이의 단조로움과 건조함을 물리치고 다양한 높낮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칼레 시위원회

 

“나는 그들을 이상화된 인물의 집합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들의 영웅성을 찬양함으로써 진실을 잊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냈다. 대의에 대한 각오와 죽음에의 공포 사이의 끊이지 않는 갈등으로 인해 그들은 각자 자신의 의식 속으로 침잠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고의 희생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다. 그들의 정신은 그들을 앞으로 가라고 떠미는 반면 그들의 다리는 발걸음을 떼놓으려 하지 않는다. 엄청난 희생의 무게 때문에 굶주림은 잊었지만,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힘들게 자신을 이끌고 있다. ...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 약해진 육체가 어떻게 삶을 움켜쥐고 있는지, 그리고 그 영혼이 용기를 파먹고도 얼마나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다면, 나는 이 웅장한 실화의 감동을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 로댕

 

**** 하고 싶은 말 ****

판타지에 나오는 영웅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모두 그렇게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그런 영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는 7명의 칼레의 시민들 같이 그렇게 고뇌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희생하는 영웅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웅이 슈퍼맨처럼 모든 걸 다 해주길 바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외롭고 힘든 우리 영웅의 짐을 나누어 짊어질 줄은 모르고 그를 영웅이라 칭함으로써 우리들이 조금씩 나눠 짊어져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집권 초기, 노대통령이이 지지자들에게 보냈던 서운함이 어떤 의미인줄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는 영웅 혼자서 외롭게 싸우는 일이 없도록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삐뚤어진 검찰 권력을 바로잡고, 친일 잔재세력인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멸하여 진정한 조국통일을 이룰 그날까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무엇 하나라도 보태겠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사악한 친일잔재들이 우리의 영웅을 능멸하는 것을 두고 보지만은 않겠습니다.

노무현님 사모 연금에 이메일 보냈습니다.

 

**** 사족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화를 재현한 걸작 중 마지막 제작품인 12번째 작품은 서울 태평로 삼성프라자 1층 로댕 갤러리에 있습니다. 이 불후의 걸작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아직 이 작품을 못 보신 분들은 한번 쯤 가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 유명한 지옥의 문(아래쪽 사진)도 같이 있습니다.

 

ⓒ 평화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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