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샬럿츠빌은 왜 증오의 도시가 됐나

거울닦는 달팽이 2017. 8. 17.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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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샬럿츠빌은 왜 증오의 도시가 됐나 

지난 11일 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우월주의 집회에 참가한 남성이 횃불을 들고 버지니아대학 교정을 행진하고 있다. 샬러츠빌|AP연합뉴스지난 11일 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우월주의 집회에 참가한 남성이 횃불을 들고 버지니아대학 교정을 행진하고 있다. 샬러츠빌|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버니지아주 샬러츠빌은 3년 전 전미경제연구소(NBER) 조사에서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로 뽑혔다. 샬러츠빌에는 훈훈한 지역 공동체, 널리 공유되는 진보적 가치, 명문 버지니아대, 온화한 기후와 미식,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 등이 있었다. 이곳이 고향인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썼다.

그러나 제퍼슨의 이상을 구현한 듯 했던 샬러츠빌은 지난 수개월 사이 ‘증오의 도시’가 됐다. 지난 주말 이곳에서 열린 폭력 극우 집회에 6000명이 몰려들고 나치즘에 경도된 20세 공화당원이 항의 시위대를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해 1명이 숨졌다. ‘유나이트 더 라이트(Unite the Right)’집회에서는 나치식 인사 ‘헤일 트럼프(트럼프 만세)’와 나치의 구호 ‘피와 영토’가 울려퍼지고 나치 깃발과 남부연합 깃발이 펄럭였다. 이들은 버지니아대 교정에 들어가 설립자 제퍼슨의 동상을 보호하려는 항의 시위대를 횃불로 에워쌌다. 극우 집회를 조직한 백인 우월주의 운동가 제이슨 케슬러가 기자회견을 하려하자 성난 시민들은 “테러리스트” “살인자”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테리 매콜리프 주지사는 “이들은 미국인이 아니다.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극우 집회 ‘유나이트 더 라이트’의 홍보 포스터. |트위터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극우 집회 ‘유나이트 더 라이트’의 홍보 포스터. |트위터

지난 4월 샬러츠빌 시의회가 이멘서페이션 파크에 있는 남부연합의 맹장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이 직접적 계기였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 텍사스주 오스틴 등에서도 남부연합군 동상 문제를 놓고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 중에서도 샬러츠빌은 도널드 트럼프 정권 출범 후 거리낌 없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공략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버지니아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도시 샬러츠빌은 진보 성향이 강한 곳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전체 인구 4만7000명 중 80%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다. 1980년대 이후 대선에서 공화당에게 한번도 내준 적이 없는 민주당의 텃밭이다. 케슬러는 “지역사회 전체가 나라 전역 대학촌에서 옹호하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를 흡수해 극좌로 치우쳐 있다”고 했다. ‘평화로운 인종청소’를 주장하는 백인 우월주의자 리처드 스펜서는 지난 12일 영상에서 “우리는 이곳을 다시 우주의 중심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펜서는 지난 5월 리 장군의 동상 앞에서 횃불 집회를 주도했고 지난달에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쿠 클럭스 클랜(KKK)이 리 장군의 심복이자 명장으로 유명했던 토머스 잭슨 장군의 동상 앞에 모여들었다.

극우들이 되살리겠다는 샬러츠빌의 ‘과거’는 지금과 달랐다. 샬러츠빌을 비롯해 버지니아는 1960년대까지도 인종차별이 매우 심했던 곳이다. 이곳은 대표적 노예주이자 남북전쟁의 핵심 무대였다. 남북 전쟁 초기 버지니아가 남부연합에 가입한 것은 남북전쟁 초반 전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샬러츠빌 바로 옆 리치먼드는 남부연합의 수도였다. 뉴요커는 “많은 진보주의자들의 고향인 샬러츠빌은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의 유산에서 스스로 벗어나 강력한 사회적 규범을 만든 모델이었다”고 적었다.

샬러츠빌에 모인 단체의 면면을 보면 말 그대로 온갖 극우들의 이합집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지지 그룹인 알트라이트(대안우파)를 비롯해 백인 우월주의 단체, 신나치주의 단체들이 뒤섞여 있다. 케슬러는 느슨한 대안우파 조직 중 하나인 ‘프라우드 보이스’ 소속이다. 알트라이트의 ‘전투그룹’인 알트기사단도 참가했다. KKK 뿐 아니라 인종적 분리를 주장하는 아이덴티티 이브로파, 남부 지역의 분리를 주장하는 남부동맹, 신나치주의를 내건 뱅가드 어메리카 등도 참여했다. 이들의 주장은 서로 뒤섞이며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물론, 이들의 ‘커밍아웃’에 결정적 힘을 실어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묵인이다.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한 기고는 “트럼프가 샬러츠빌에 모인 이들의 횃불에 불을 붙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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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또 한 번의 도덕적 실패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받아 마땅한 칭송을 누리고 있는지, 적들이 자신의 영광을 빼앗아가지는 않는지가 늘 가장 중요했죠. 이 점을 명심해야만, 리더십이 빛을 발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트럼프 대통령을 이끌고 있는 도덕률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샬럿츠빌을 공포와 폭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비난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미국인들이 거창한 설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치 깃발을 흔드는 시위대와 군중을 향해 돌진해 여러 사상자를 낳은 자동차를 보고도 애써 에두른 표현을 찾는 대통령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렸죠. 끔찍한 날 공허하기 짝이 없었던 대통령의 말, 그 빈 공간에서 끔찍한 어둠과 공포를 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정말로 백인 인종주의자들에게 공감하는 것인가? 적어도 대통령이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표를 너무 중시해서 이 유권자 집단을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는 무거운 혐의이지만, 대통령을 비판해온 사람들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럿 가지고 있습니다. 한 기자가 대통령에게 백인 인종주의 시위대를 비난하는가를 묻자, 매사 확고한 소신을 밝히기에 망설임이 없었던 대통령이 묘하게 특정 집단을 폭력 사태의 주범으로 명명하기를 꺼려했던 장면도 그 중 하나입니다. 대신 대통령은 “여러 집단의 증오, 편견, 폭력(hatred, bigotry and violence on many sides)”을 비난했죠. 자신의 임기 중에 있었던 중요한 장면마다 자신의 공을 앞세우기 바빴던 트럼프는 이번 사태를 심지어 전임자인 오바마의 탓으로 돌리면서 ”상황이 이렇게 된지 오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대통령은 ”법과 질서의 빠른 회복“과 ”인종과 신념을 초월한 모든 미국인들의 단합“을 촉구했죠.

트럼프의 미지근한 대응은 분명 두드러졌습니다. 똑같은 사태를 지켜본 공화당 지도자들마저도 비난의 대상을 분명히 했으니까요. 지난 대선 때 트럼프의 경선 상대였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있는 그대로, 즉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 공격”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이를 전 국민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도 보수파에 속하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증오와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것에 반대를 표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했고, 자동차에 의한 살인은 국내 테러라고 못박았습니다. 온건파인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 역시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에게 “악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대통령은 유럽에서 이슬람교 테러 집단에 의한 공격이 발생할 때마다 즉시 이를 규탄하면서 미국 국경 강화의 근거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달 초 미네소타의 모스크가 공격받았을 때는 침묵을 지켰죠

본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인종주의자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말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일화는 어떻습니까? 한 기자가 “당신을 지지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통령은 그 질문을 무시했죠. 실제로 샬럿츠빌의 시위대는 남부군의 깃발, 횃불과 함께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 슬로건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KKK단의 전 리더는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실현하고 우리의 나라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죠.

샬럿츠빌의 시위를 지켜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2016년 예상을 깬 당선이라는 자신의 승리를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요.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흔들며 행진하는 인종주의자들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과 정치적 계산에 스쳐갔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이죠.

토요일 오후, 대통령은 샬럿츠빌 사태가 참전용사들과의 사진 촬영 행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갔다고 불평하는 내용의 트윗을 남겼습니다. 참전용사들은 미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애썼는데 “샬럿츠빌, 슬프다!”는 트윗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관련 수사에서도 비슷한 구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외세와 힘을 합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자기 승리의 정당성이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심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를 분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것이죠.

다음에도 미국 대통령이 자리에 걸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생긴다면,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외로 가장 단순하고 천박한 설명이 그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사실을요. 물론 다른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통령의 자존심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많은 것들이 설명될 것입니다. 사안이 무엇이 되었든,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자기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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