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름다워~

[스크랩] 삶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 메르세데스 소사 Mercedes Sosa

거울닦는 달팽이 2009. 10. 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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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as A La Vida / Joan Baez 조안 바에즈 & Mercedes Sosa 메르세데스 소사

 

 

 

Mercedes Sosa - Gracias A La Vida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밤과 낮에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를 들려주고
망치 소리, 터빈 소리, 개 짖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녹음해 넣을 수 있는 넓은 귀도 주었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언어와
소리와 알파벳을 선사하고
어머니와 친구와 형제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도 주었고요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피곤한 발로 진군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시와 늪지
해변과 사막, 산과 평야
당신의 집과 거리, 그리고 당신의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때
악에서 멀리 떠난 선함을 볼 때
그리고 당신의 맑은 눈의 깊은 곳을 응시할 때
삶은 내게 그 틀을 뒤흔드는 마음을 선사했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웃음과 눈물을 주어
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슬픔과 행복은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를 이루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노래입니다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남미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의 마지막 노래 

 

 

 

 

 

[아시아경제 고경석 기자]

 

"모든 사람에게 먹을 식량이 있고 입을 옷이 있으며 살 집이 있는 것,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꿈꾸는 유토피아입니다."

'검은 여인(La Negra)'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메르세데스 소사는 아르헨티나 민중의 어머니였다.

국민들에게 의식주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를 소사는 비판했고, 민중들은 그를 어머니처럼 사랑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독재의 시퍼런 총칼에 소사는 당당히 맞섰고 자신을 버린 나라를 위해 노래했다. 
 

◆ 메르세데스 소사, 1935.07.09-2009.10.04

지난 4일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국보급 국민가수를 잃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국경에 갇힌 '국민가수'가 아닌 전세계가 사랑하는 '국민가수'다. 74세의 일기가 결코 짧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까지 앨범을 내며 건재를 과시한 국민가수였기에 고인의 죽음은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은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굴곡을 공유한다.

"나는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앨범을 냈던 소사는 노래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삶과 역사, 정치를 노래했다. 소사는 가수 이상이었다.

'신토불이' 음악을 대중음악의 뿌리로 삼고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소사는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의 선구자로서 민중의 자유와 권리, 각성과 단결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비단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남미 모든 국가의 민중이 그의 노래에 입을 맞췄다.

그것은 땅에 대한 입맞춤, 삶에 대한 입맞춤이기도 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칠레 여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작곡한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Gracias A La Vida, 생에 감사해)'를 불러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노래는 누에바 칸시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이 노래를 공연장에서 들으며 "소사, 당신의 삶에 감사해요"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 1970년대, 남미와 누에바 칸시온

소사의 삶은 비델라의 쿠데타 정권이 나라를 장악했을 때 위기에 처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소사만의 것도 아니었고 아르헨티나 것도 아니었다. 거의 남미 전체의 것이었다. 1973년 칠레는 육군사령관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를 통해 탄생한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켰다. 그해 9월 11일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폭격으로 숨졌다.

그로부터 5일 후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 가수 빅토르 하라가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 가혹한 고문으로 손목과 팔이 부러지고 기관총으로 난사당한 시신은 공동묘지 밖에 버려졌다.

칠레에 이어 군부 쿠데타가 정권을 잡은 아르헨티나도 대중음악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1978년 두 번째 남편을 잃고 1년이 지난 뒤 메르세데스 소사는 대학교에서 200여명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노래하던 중 이들과 함께 감금됐다. 후에 소사는 "정치적인 공연이 결코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당시는 좌파 사이에서 실종과 피살이 흔한 일이던 군부독재 시기였다.

메르세데스 소사를 살린 건 해외 국가들의 압력이었다. 소사는 1000달러를 내고 풀려났으나 조국을 떠나야 할 운명에 처했다. 자녀들을 남겨놓고 소사는 여행가방 세 개와 핸드백 하나만을 들고 유럽 각국을 전전하며

연명해나갔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군부가 생명을 다할 때쯤인 1982년 다시 조국으로 돌아왔다.


◆ '칸토라', 메르세데스 소사의 마지막 노래들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소사는 이후에도 계속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북미와 남미를 오가며 공연을 계속했던 그는 재임을 위해 법을 개정하고 부패의혹에 시달렸던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에 반대하는 한편 후에 대통령에 선출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를 지지하기도 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키르치네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2003년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펼칠 뻔했다. 고질적인 심장병으로 인해 소사는 한국 팬들을 만나지 못한 채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4년 만의 신작 '칸토라(Cantora)'를 마지막 선물로 남겨놓았다.

CD를 재생하면 찰리 가르시아, 피토 파에즈 등 자국 뮤지션들을 비롯해 카에타누 벨로수, 샤키라, 조앙 마누엘 세라 등 여타 남미 국가 뮤지션들을 초대한 소사의 진솔한 목소리가 19곡을 통해 울려퍼진다. 고마운 앨범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삶에 감사를 보낸다. 
 

 

 

 

 

 

 

 

 

 

2009년 10월 4일 오전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민중가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가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소사는 지난 9월 18일부터 숙환인 신장과 폐 질환으로 집중 치료를 받아왔으나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소사를 사랑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국회로 옮겨진 그녀의 시신에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그녀의 장례식은 5일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시내 샤카리타 묘지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Cristina Elisabeth Fernandez)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짙은 검은색 머리 때문에 '라 네그라(La Negra, 검은 여인)'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던 소사는 라틴아메리카 고유의 음악에서 대중음악(fork music) 음악의 원류를 찾는 운동인 동시에 민중음악을 통한 사회변혁운동인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을 이끈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들 편에서 그들을 옹호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래를 무기로 삼아 악명 높은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에 참여했다. 

 

소사는 1935년 7월 9일 투쿠만(Tucumán) 주 산미구엘(San Miguel)에서 프랑스인과 케추아족 인디언(Quechua Amerindian) 사이의 혼혈인 메스티조(mestizo)로 태어났다. 

소사의 아버지는 가난한 노동자였기에 그녀는 어려서부터 현실문제에 눈을 떴다. 

그녀는 15세부터 노래를 시작했다. 1959년 그녀는 첫남편 마누엘 오스카 마투스(Mauel Oscar Matus)의 도움으로 앨범 'La Voz de la Zafra'을 발표했다. 5년 뒤인 1965년에는 코르도바(Córdoba) 시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960년대 중반부터 진보주의적 가수이자 민중운동 활동가이기도 했던 소사와 그녀의 남편은 본격적으로 누에바 칸시온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녀는 1960~1970년대 아르헨티나 누에바 칸시온의 선두주자로 활동했다. 소사는 평생 남미의 전통음악을 추구했던 아르헨티나의 가수이자 작곡가 아따우알바 유빤끼(Atahualpa Yupanqui, 1908~1992)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남미의 구전음악과 종교음악에 바탕을 둔 노래들을 통해서 그녀는 고통받고 상처받은 민중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소사는 언제나 압제와 착취에 시달리는 민중들을 대변하였기에 그녀의 노래는 정치색을 띨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사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로 불렸다.  

 

칠레 민속음악의 선구자 비올레타 파라(Violetta Parra, 1917~1966)가 작사, 작곡한 '생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를)'는 소사가 불러서 더욱 유명해진 노래다. 멕시코 출신의 미국 반전가수 조안 바에즈(Joan Baez, 1941~)가 부른 뒤에 이 노래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독재정치와 인종차별에 맞서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여성 민권운동가들이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은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묶어버렸지만, 1970~1980년대 전세계 양심적 지식인과 진보적 좌파들의 송가로 불리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체포와 투옥 끝에 국외로 추방당한 그녀는 1976~1982년까지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국의 민중들도 당시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에 이어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오랜 망명생활 끝에 죽음을 무릅쓰고 1982년 귀국한 소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을 갖고 그녀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르헨티나 민중들에게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Gracias a la Vida)', '알폰시나 이 엘 마르(Alfonsina y el Mar)', '솔로 레 피도 아 디오스(Solo le pido a dios)' 등 남미 포크 음악의 걸작들을 들려주었다. 심금을 울리는 소상의 노래는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그녀의 공연 실황 앨범 '엔 아르젠티나(En Argentina)'는 14년이나 뒤늦은 2006년에서야 국내에서 발매되었다. 

 

소사는 생전에 40여장에 이르는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 영국 가수 스팅(Godon Matthew Sumner, 1951~)과 공연을 가진 바 있다. 또, 조안 바에즈 외에 브라질 출신의 까에따누 벨로주(Caetano Emanuel Viana Teles Veloso, 1942~), 스페인 출신의 후안 마누엘 세라(Joan Manuel Serrat, 1943~), 콜롬비아 출신의 샤키라(Shakira Isabel Mebarak Ripoll, 1977~) 등과도 공연했다. 소사는 1994년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공연했다. 2002년에는 뉴욕 카네기홀, 2004년에는 로마 콜로세움에서도 성황리에 공연을 가졌다. 

 

2008년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Andrew Soderbergh, 1963~) 감독의 영화 '체(Che)'에는 소사가 부른 '발데라마(Balderrama)'가 사운드트랙으로 쓰이기도 했다. 2009년 6월 국내에서 발매된 앨범 '칸토라(Cantora)'는 그녀의 마지막 유작으로 남게 됐다

 

생전에 평소 '나는 좌파다.'라고 당당히 밝히곤 했던 소사는 라틴아메리카의 포크음악 나아가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남미의 뮤지션들 뿐만 아니라 영미권 뮤지션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으며,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위대한 음악인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나 조안 바에즈 같은 위대한 민중가수들이 나오기를...... 

 

고 메르세데스 소사 여사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http://cafe.daum.net/sanchassa/bho/271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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