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펌) 분하고 원통하다.

거울닦는 달팽이 2010. 6. 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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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ddanzi.com/news/24524.html

 

[정치] 분하고, 원통하다.


2010.06.03.목요일

 

이 글은 수뇌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기보다, 이번 선거에서 반MB 성격의 야권연대를 지지했던 한 개인의 의견임을 미리 전제하도록 한다.

 

 1. 여당 참패, 야당 약진?

 

MB가 심판받았다고 한다. 민주당을 위시한 야권과 단일화된 범야권이 대승을 거뒀다고도 하고, 약진했다고도 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참패했다고 한다. 언론에서 그리고 있는 민주당의 입장을 타로로 표현한다면 <Ace of Swords(검의 에이스)>가 어울릴 것이다.

 

투쟁의 상징인 검, 그 검의 긍정적 기운의 집결체. 승리, 정복, 권위, 성공, 정점에 다다른 힘, 결국 이뤄내고야 마는 역량, 강력한 스펙,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는 힘, 영역 쟁취를 뜻한다.

 

한편 '참패'라는 수식어가 붙는 정권과 한나라당의 상황은 다음 카드에 해당될 것이고.

 

<5 of Swords(다섯 개의 검)>

이 카드의 주인공은 전리품을 챙기는 승리자가 아니라 싸움에서 패배해 칼을 버리고 도망가는 두 명의 인물이다. 따라서 패배, 실패, 수치, 모멸, 인간관계에서의 손해, 퇴출, 좆망을 뜻한다.

 

그래서 마침내 정권에 대한 심판<Judgement(심판의 날)>이 이뤄진 것 같은 분위기다.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이 열리고 시체들이 일어선다.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왔는지, 그 과정이 결과가 되어 에누리없이 되돌아온다. 선(善)과 노력에는 보상이, 악(惡)과 방종, 게으름에는 응분의 대가가 내려진다. 도망갈 곳은 없다.

 

그런데 기분이 전혀 좋지 않다. 승리가 실현되기는커녕, 마뜩찮은 방식으로 '유예'되었기 때문이다.

 

 2.. 오컴의 면도날, 우리는 당하고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 대해 여기저기서 내놓는 종합적인 분석은 대략 이렇다. 노풍과 북풍의 대결에서 노풍이 승리했다. 노무현 라인이 드라마틱하게 부활했다. 북풍이 역풍이 됐다. 젊은 층, 진보층이 결집했다. 숨어있는 10%가 결국 움직였다. 정권에 대한 견제론이 힘을 얻었다...

 

왜 이런저런 해석들이 난무할까? 그야 여론조사 결과가 크게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왜, 뒤집어졌을까. 기존 ARS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핑계다. 그 때문에 20%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왜, 젊은 층은 핸드폰 세대라서? 그럴리가.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는다. 숨어 있는 10%의 야당표가 움직였다는 말도 헛소리다. 숨긴 어디에 숨나. 민심이 유령인가? 심령술 얘기를 하는 격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제안한다 : 여론조사 방식 자체가 글러먹었다. 애초에 MB 지지율 50%대를 누가 믿었나. 그럼에도 무한반목되는 언론의 여론조사발표는 결국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리가 '전혀' 없다.

 

언론탄압, 그를 통한 언로 장악, 교묘하고도 노골적으로 조성된 북풍, 비열하게 계산된 타이밍 장난(천안함 합동조사단 발표와 축구 한일전이 치러진 날을 말하는 것이다.), 젊은층과 진보성향 지지층의 선거의지를 꺽기에 충분(하게끔 결과적으로 발표되어 주최측의 의도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여론조사 결과까지... 

 

한편 조중동은 야권에 희망은 없다는 논조를 집요하게 보도했다. 젊은층이 결집했다고 한다. 그래서 15년만에 투표율이 최고치를 쳤다고 한다. 그래, 조금 결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듬이가 조금만 발달된 독자라면 알 것이다. 그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젊은층이 (특히 서울경기도에서) 투표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저들에게 이미 사로잡힌 채로 선거를 시작했다. 다음 카드는 <Devil(악마)>로, 악마의 쇠사슬에 사로잡힌 남녀의 모습이다.

 

두 남녀가 악마에 예속되어 있다. 의뢰자 개인에 대해서는 흔히 집착, 정신병증, 불면증, 중독 등 헤어나오기 힘든 정신적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남녀를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을 보면 의외로 느슨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마음만 먹는다면 예속의 상태를 박차고 뛰쳐나올 수 있음에도, 카드의 주인공들은 감히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종교에 빠져 있지만, 민주혁명을 이뤄낼 가능성은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온다.

 

언론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번 선거를 북풍과 노풍의 대결구도로 규정했다. 이 폭압적 정권의 일방통행과 대비되는 전대통령의 안타깝고 비극적인 죽음, 그 중음에 서린 정치적/역사적 의미를 한갖 '풍'으로 축소시킨 것이다. 거기다 안보와 국방의 기치를 덧씌운 소위 '북풍'. 북풍의 대척점에 놓여진 것만으로 노무현은 자동적으로 '반북풍', 즉 '친북'이 된다.

 

북풍 투척 후, 여당 후보들은 거의 전 지역에서 10% 이상씩 차이를 벌려나갔다. 북풍이 없었다면, 저 이익도당들은 전멸했다. 다시 오컴의 면도날. 북풍이 역풍이 되었기 때문에 저들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 북풍은 단순하고 당연하게도, 저들이 부채질한 딱 그만큼 불었다고 보는 편이 너무나 합당하다.

 

역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풍 덕택에 전멸하지 않고 비등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김문수와 오세훈은 10% 이상씩을 얹어놓고 시작했다. 서울과 경기도는 범야권의 것이었다. 예상을 뒤업고 접전을 벌인 게 아니다. 명백히, 빼앗긴 것이다.

 

분하고 원통하다.

 

안희정과 이광재. 개헌이래 가장 민주적이었던 대통령의 좌우 양팔, '좌희정'과 '우광재'로 불렸던 두 사람이다.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은 고사하고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비판하는데도 벌벌 떨어야 하는 이 신독재시대에, 턱걸이로 신승한 것이 어떻게 '대격변'일 수 있는가.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진보후보 곽노현이 간신히 이겼다. 이게 대사건이라고 한다. 유권자의 자식들을 비인간적인 무한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성적표 숫자놀음으로 그들의 자존감과 인격에 흔들어온 서울에서 말이다. 북풍에 연계된 노골적인 전교조 탄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격변, 변동, 이변들은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는 이번에도 느와르를 목격했다.

 

<5 of cups(다섯 개의 잔)>

한 남자가 엎질러진 세 개의 잔을 보며 슬퍼하고 있다. 손실, 실망, 슬픔, 좌절, 그러나 아직 남겨져 있는 것에 대한 희망을 뜻하는 카드다. 그에게는 아직 두 개의 컵이 남아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원래 우리의 것이었어야 할 성과의 상당부분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우리의 등 뒤에 남아있는 결과물에 주목하자. 그것은 부족하게나마 보여준 국민의 힘과 앞으로 계속될 범야권 연대의 가능성이 아닐까.

 

거기다 부정선거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경기도에서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도장이 찍히지 않은(그래서 투표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투표용지가 배부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구로구에서는 오세훈에 미리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단순 실수'로 버젓이 배부되다가 적발되었다. 경기도지사 심상정 후보의 사퇴는 공지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투표용지도 그냥 방치된 채 투표가 진행되어 수많은 무효표를 양산했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어가 없다는 말장난으로 정권 수뇌의 죄를 표백한 세력이다. 죽은 장병들의 시체를 밟고 서서 전국민을 상대로 십수번의 거짓말을 해 놓고 거짓말을 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잡아떼는 세력이다. 용역깡패가 시민을 불태워 죽이고, 일군의 예비역이 가스통을 들고 백주에 설치는 백색테러를 획책 및 조장 내지는 방관하는 세력이다. 자유당정권이 했던 짓거리를 재연하지 않으리란 보장 없다. 의심, 당연히 간다. 그러나 물증이 없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보다는 민주당 얘기를 하는 편이 더 생산적일 것 같다.

 

 

3. 민주당과 노회찬

 

이미 MB는 끝났어야 한다. 그게 옳은지 아닌지를 떠나, 그게 정상이다. 그 설치류의 숨통을 끊지는 못해도, 숨통을 눌러죄며 롤러코스터같은 레임덕을 선사하지 못한 이 선거엔, 민주당의 책임이 상당하다.

 

<8 of Swords(여덟 개의 검)>

나쁜 소식, 위기, 봉쇄, 강력한 감시, 무엇도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상태를 뜻하는 카드다. 날카로운 검에 둘러싸여 있어 언제든 베일 수 있다. 앞도 보이지 않는다. 또 검(삽)을 잡으려 해도 몸이 묶여 있어서 여의치 않다.

 

...    이렇게 만들어 줬어야 하는 거다.


 

때를 기다리고,

때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때를 기다리는 정세균과 민주당 수뇌부...

 

지금의 '승리'가 기다리고 기다린 자신들의 현명함 때문이라고 자부한다면, 민주당 수뇌부여, 집어 치워라. 심상정과 노회찬을 비롯, 범야권에 대한 당신들의 태도가 잊혀질 거라고 믿지 마라. 특히 김민새, 당신 행동 똑바로 하도록 해라. 대변인인 우상호, 군소야당에 대한 그 오만한 태도를 내버리지 못한다면, 당신의 입도 MB의 입처럼 용서받지 못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노회찬과 진보신당을 욕하지는 말자. 그들보다는 민주당의 잘못이 더 크다. 물론 더 큰 잘못, 아니 죄악은 MB와 그의 패거리들에게 있다. 그래, 노회찬이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면 서울시를 건졌을 것이다. 서운할 수 있다. 미울 수 있다. 당연하다. 나도 아깝다. 하지만 비난하지는 말자.

 

그의 선택이 선거에 끼친 영향에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0.8%어치의 유권자만 투표장을 찾았다면. 저들이 전쟁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않았다면. 재래언론의 혀에 유권자들이 조금만 덜 속았다면, 민주당이 제대로 정치를 했다면, 민주당내 경선과정이 더 투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하자. 이 모든 변수를 제쳐둔 채 득표율이라는 결과를 놓고 노회찬에게 책임의 일부를 돌리는 일은, 너무하지 않은가.

 

 

4. 심판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번 선거는 파도처럼 몰려온 비상식적인 외부자극에 의해, 특정세력의 의도의 유무를 떠나 결과적으로는, 심각하게 훼손된 선거다. 비겁한 룰과 심판 때문에, 우리는 열 대 맞고 한 대, 제대로도 아니고 비껴 쳤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4대강사업이 경기도에서는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아니 김문수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계속될 것이다. 서울광장은 앞으로도 당분간 오세훈의 안마당으로 전락한 채 시민의 권리 앞에 오만한 장벽을 세울 것이다.

 

정신차리자. 우리는 속았고, 당했다. 아주 비열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또한 한심한 방식으로(주로 민주당에 대고 하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새날이 밝았다고? 웃기지 말자. 미미한 여명이 시작되려 하고 있을 뿐이다. 달조차 초승꼴 모냥으로 빛을 죽이고 있다. 여명조차도 구름에 가려 칠흙과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너무 분해서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다. 이 부정한 기득권세력이 지금부터 떨어댈 엄살과 말장난이 너무 뻔해서, 민주당의 기고만장과 대책없음이 벌써부터 너무 선명히 그려져서, 나는 화를 삭일 수 없다.

 

<7 of sword(일곱 개의 검)>

한 병사가 자기 몫의 전리품을 거두고 있다. 기분이 좋은지 두 개의 검을 놓치고 있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원래는 부분적인 성공, 손해의 가능성, 실패할 수 있는 계획을 경고하는 카드다.

하지만 카드의 주인공이 민주당이라면 해석이 달라져야 할 터. 저 두 개의 검은 희희낙낙하는 와중에 자칫 간과할 수 있는 민심과 자신들이 받은 표의 역사적 의미로 보인다. 거대야당의 기득권에 안주하려 한다면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이 주인공의 등 뒤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민심의 대반란"으로 정권과 MB를 "심판"했다고 한다. 속지 말자. 심판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 말 그대로 심판을 완수했다고 착각할 우리의 모습을 경계하자.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표가 일시적인 대출금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자까지 똑바로 붙여 양심껏 상환하는지, 우리는 두고 볼 것이다.

 

모의고사 제대로 치렀다. 이토록 불리한 환경에서도 국민들은 소정의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직, 아직 부족하다. 너무나 많이 부족하다. 이번에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지 기억하자. 다시는 농락당하지 말도록 하자. 2012년, 진짜 심판이 뭔지 보여주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The hanged man(거꾸로 매달린 남자)>카드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한 남자가 어떤 이유로 인해 거꾸로 매달려 있다. 머리의 후광(아우라)은 주인공의 지혜와 선량함을 상징한다. 따라서 그가 받는 억압은 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카드는 힘들고 억울할지라도 좀 더 참고 견디면 곧 풀려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저 후광을 잃어선 안 된다. 후광의 정체는 바로 이번 선거에 드러난 국민들의 의지가 아닐까. 지금의 안타까움을 기억하고 희망과 분노의 에너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구속에서 풀려나 똑바로 일어설 것이다. 이제 꺾였다. 2년 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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