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름다워~

[스크랩] 한국의 슈바이쩌 이태석 신부님 동영상

거울닦는 달팽이 2010. 12. 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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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사제·의사는 기본…십장·선생님 등 ‘무한 변신’

아이들밴드 만들어 총성 대신 음악 ‘희망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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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과 단지 꿈으로만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로 간 의사 슈바이처를 동경하다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 수단으로 날아가 8년 동안 살아온 이태석(46) 신부를 만났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살레시오수도회에서 처음 본 이 신부는 영락없는 아프리카 원주민 사촌이다. 그가 아프리카에 가기 전 희멀겋던 얼굴색은 간 곳이 없다.
 
의사 되고도 이루지 못한 꿈 찾아 로마까지 가 신부수업
 
이 신부는 어려서부터 수도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위의 형이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가자 자기마저 수도자로 출가하면 어머니가 너무도 쓸쓸해할까 두려워 수도자의 길을 접었다. 그가 아홉살 때 홀로된 어머니는 10남매를 키우느라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분이다. 그는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선망의 그 직업이 줄 부와 명예도 그의 꿈을 대신해줄 수 없었다. 군의관시절 인근 성당에 머물며 살던 중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뒤늦게 ‘신부 수업’을 시작했다. 로마까지 가서 공부해 사제가 된 그는 지난 2001년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Untitled-6 copy.jpg하지만 꿈을 펼칠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경비행기를 타고 수단의 남부 톤즈에 도착했을 때 섭씨 45도를 넘나들어 가만히 있어도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 날씨와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과 신문을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과의 철저한 단절, 그리고 무엇하나 먹을 것 없는 배고픔…. 3일 만에 정신을 차리고보니 자신의 문제에 집착해있는 두려움 같은 건 호사일 뿐이었다.
 
얼마 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한쪽 구석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만삭의 임신부가 심한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흙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일단 나무 아래로 그를 옮기고 열명의 여자들이 ‘인간 커튼’을 두르자마자 아이가 나왔다. 미사 중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이 신부가 “식기 전에 세례를?!”이라고 농담할 수 있을 때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뒤 그에게 오는 임신부들은 집에서 애를 낳다 순산을 못해 도움을 청하는 이들 뿐이었다. 장가도 안 간 그가 그렇게 받아낸 신생아가 무려 수백명이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고열과 구토에 시달리는 하루 수십명의 말라리아 환자들, 콜레라로 심한 설사를 하며 탈수돼 심장이 멎어가는 원주민들, 지난 2005년까지 20년 동안 200만명이 사망한 내전으로 팔다리가 잘리거나 가족을 잃어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 등 하나 같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난생 처음인 여러 악기들 혼자 익혀 아이들에게 가르쳐
 
수단의 북쪽은 무슬림들이 대부분이며 아프리카 흑인들과 아랍인들의 혼혈이 많아 아프리카 흑인처럼 검지 않다. 반면 이 신부가 머무는 남부 수단은 토속 원주민들이다. 남쪽과 북쪽은 인종도 종교도 언어도 다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남북관계와는 전혀 달리 이질적이어서 평화가 쉽게 이뤄지지 못한다. 남부 수단인들은 북부 수단으로부터 당하는 핍박으로 증오심이 강해 네살만 되면 자신이 위해 당하지않기 위해 늘 싸우려는 태세다. 그처럼 거친 아이들과 이 신부는 한데 섞였다.
 
로마의 살레시오수도회에서 파견된 두명의 신부와 네명의 수녀들과 함께 성당과 80여개의 공소를 맡고 있는 그이지만 실상 그는 그 오지에 병원과 학교를 짓는 건설현장의 십장이었고, 학생들에게 수학과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이 신부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피아노와 기타 등을 즐겨 쳤다. 어린 시절 성당에 있는 풍금을 치며 이를 지켜봐주던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따스한 시선을 느끼곤 했던 그는 음악으로 전쟁의 상흔이 박힌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년 전 남수단 최초의 브라스밴드부를 만들었다.
 
그의 청에 따라 한국에서 온 트럼펫과 트롬본, 클라리넷 등의 수많은 악기들의 대부분은 그도 처음 만져보는 것이었다. 도레미파솔레시도도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을 가르치자면 그가 먼저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고액의 레슨을 받아도 악기를 다룰까말까하는 한국에선 상상도 안가는 얘기지만 그는 설명서를 보고 혼자 악기를 익혀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까막눈 아이들 이틀만에 소리 내고 나흘째 합주 ‘음악 천재’
 
Untitled-5 copy.jpg그런데 기적과 하느님의 은총은 이 신부에게만 온 것은 아니었다. 까막눈의 아이들이 하루 이틀만에 원하는 음을 불어내고 있었고, 이틀만에 <주 찬미하라>를 연주했다. 합주 연습후 나흘째 되는 날 첫 합주곡을 다 같이 연주해 냈다. 수십년간 울려퍼지던 총성 대신 클라리넷과 플루트, 그리고 트럼펫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처음으로 울려퍼진 것이다.  연주가 끝난 뒤 아이들은 “총과 칼들을 녹여 그것으로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그 밴드부가 대통령이 국빈을 맞을 때 초청공연을 할 정도가 됐으니 ‘주 찬미’가 나오지않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과 음감을 가진 아이들은 그야말로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천재’들이었다.
 
물질적으로 보면 ‘없는 게 없는’ 한국과 달리 ‘있는 게 없는’ 곳이며, 먹고 배우고 병을 치료하는 게 쉽지않은 곳이지만 부자나라 사람들이 갖지 못한 행복의 비결이 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아는 것이다.
 
수단에서 헌신하면서 자신을 돌볼 틈이 없어 병이 든 몸을 치유하기 위해 남몰래 잠시 한국에 들어온 그에게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오늘도 “보고 싶다”며 성화란다.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던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친구가 되어버린 그가 우리의 마음을 여는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 펴냄)를 냈다.  검게 그을리고 야윈 이 신부의 눈동자에서 해맑은 아프리카 친구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 돕는 장학회

수단의 두 젊은이 초청 한국서 대학 다니게 지원

 

"매우 추워요. 그렇지만 원더풀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 내리는 것도 봤어요.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은 저희에겐 최고의 성탄절 선물입니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던 지난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살레시오수도원에서 만난 아프리카 청년 토마스 라반(24)과 존 마옌(23)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이틀 전인 19일 수단에서 한국으로 왔다. 살레시오회 사제로 지난 2001년부터 수단 남부 톤즈 지역에서 의료·교육 봉사활동을 해온 이태석(47) 신부를 후원하는 사단법인 수단어린이장학회(이사장 이재현)의 초청으로 한국의 중원대에서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수년 동안 내전을 겪은 수단은 교육·의료를 비롯한 모든 상황이 열악하다. 백신만 있으면 나을 수 있는 홍역으로 매년 아기들이 죽었고, 청소년이 되면 연필 대신 총을 쥐기 일쑤였다. 토마스와 존이 대학을 졸업할 나이에야 고교를 졸업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의사이기도 한 이 신부가 선교지로 수단을 택한 것도 "예수님이 지금 수단에 오신다면 어떤 기적을 일으킬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癌도 막지 못한 사랑 수단에서 온 라반(왼쪽에서 두번째)과 마옌(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암 투병 중인 이태석 신부(가운데)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맨 왼쪽과 오른쪽은 이들을 지원하는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이재현 이사장과 장민석 이사. 그 동안 수단 현지의 학교 건립 등을 도와온 장학회는 이번에 두 청년을 초청해 국내 대학에 진학시킨다./김한수 기자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서 "혼자서 10명 몫을 하신 분"(토마스)이었다. 병원과 학교를 짓고 어린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브라스밴드를 결성하고 연주를 다니는 그를 현지인들은 '쫄리'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이 신부의 세례명 존(요한)에 성을 붙여 '존리'라고 부른 것.

현지 청소년들에게 지구 저편 아시아 끝에서 온 이 신부는 '스타'였다. 두 청년은 "신부님이 처음 저희 마을에 오셔서 '음악 들으러 오라'고 말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마스는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그래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신부님을 닮고 싶었다"고 했고, 존은 "저희 삶에 의미 있는 아시아인은 존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현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하면서 자신도 "매일 작은 희망을 만난다"던 이 신부의 눈에 특히 들어온 청년들이 있었다. 악기든 공부든 가르쳐주면 척척 알아듣고 따라오는 토마스와 존이었다. 이 신부가 지난 5월 펴낸 수단 선교체험기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사)에도 소개된 청년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커다란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 신부는 "두 청년을 우선적으로 공부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수단어린이장학회가 첫 지원자로 이들을 초청한 것이다. 두 청년은 장학회의 도움으로 연세대 한국어학당을 거쳐 내년 새 학기부터 충북 괴산에 있는 중원대에 진학해 의료공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부푼 꿈을 안고 온 한국이지만 자리를 함께한 두 청년은 이 신부의 야윈 얼굴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해 말 휴가로 귀국했던 이 신부는 암이 발견돼 1년째 투병 중이다. "워낙 건강한 분이었는데 처음 이메일로 야윈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며 울먹이는 두 청년에게 이 신부는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줬다.

"늘 내 안에서 예수님이 다시 태어나시길 기도한다"는 이태석 신부는 "이들이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귀국해 수단을 이끄는 엘리트로 성장하고, 둘을 시작으로 더 많은 수단 청년이 좋은 교육을 받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석 신부 후원회 창립에 목사·스님·교무 참석 '사랑 실천' 종교계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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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아프리카 희망 나눔 후원회' 창립총회. 왼쪽 위 사진은 후원회장인 이태영 신부. 오른쪽 위 사진은 행사에 참석한 타종교 성직자들. 왼쪽부터 원불교의 정안 교무 불교의 현철스님 개신교의 양현승 목사


   이태석 신부의 사랑 실천이 종교의 차이를 넘고 있다.

   이 신부는 내전과 가난으로 황폐해진 남수단 톤즈에서 신부로 의사로 교사로 희망을 꽃피우고 있는 이 신부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인 가톨릭계는 이 신부를 지원하기 위해 '아프리카 희망 나눔 후원회'를 조직했다.

   후원회는 마침내 지난달 17일 토렌스에 있는 성프란치스코한인천주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개신교의 양현승 목사와 불교의 현철스님 원불교의 정안 교무가 참석했다.

   후원회 회장이며 이태석 신부의 친형인 이태영 신부는 이를 "좋은 일들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종교가 평화를 지향하지만 종교 때문에 다투기도 하는 현실도 있으니까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평화를 이룩하는데 솔선수범하는 것입니다. 단체가 커져서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은 (함께) 할 것입니다."

   미주종교평화협의회 상임대표인 양 목사는 창립총회 축사에서 "희망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비빌 언덕이 되는 희망은 나눌수록 좋습니다. 종교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참여합니다"라고 밝혔다. 양 목사는 "협의회 차원에서 참가를 결의했고 후원회에 헌금도 했다"고 말했다.

   양 목사는 또 이태석 신부 후원카페에도 글을 남겨 종교를 뛰어넘는 지지와 참가를 표시했다. 양 목사는 "아프리카에 '희망봉'이 있듯이 여기 토렌스에 '희망봉'이 오늘 생기게 된다"며 "(후원회가) 아프리카의 수단 어린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희망을 얻은 일"이라고 말했다.

   아이디 이화는 "목사님 스님 교무님 신부님과 함께 한 총회는 주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나눔의 장이였으리라 믿습니다"라고 답글을 올렸다.

   이인석 후원회 홍보담당은 "이 신부님의 활동을 담은 책과 DVD를 본 개신교 신자분이 너무 훌륭한 일을 한다며 선뜻 1년치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홍보담당에 따르면 창립총회에는 모두 120여명이 참가했고 이중 80%가 새 회원이었다. 후원회는 우선 회원을 늘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영어 브로셔와 영어 자막 DVD를 제작해 2세들에게도 홍보하게 된다.

   한국에서 암투병 중인 이태석 신부도 창립총회에 축하와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안유회 기자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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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인성대상 특별상을 수상한 이태석 신부를 만나

 

 

이태석 신부
제7회 인제인성대상 특별상을 수상한 이태석 신부는 인제대학교 의대 3회 졸업생이다. 의과대 81학번으로 인턴과정을 수료 후, 신부가 되어 저 멀리 내전과 기아로 고통 받는 수단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부로, 인술로 세상을 구하는 의사로서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지만, 그는 그냥 그 자리에 자신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의사라는 전도유망한 길을 걷다 서른 일곱에 신부가 되고, 어머니의 눈물마저도 뒤로 한 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곳 중 하나인 수단으로 가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이태석 신부. 인제인성대상을 수상하기 위해 귀국한 그를 만나 수상소감과 함께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했는지 들어보았다.


“나는 수단에서 매일 희망을 만납니다”

나는 수단에 살고 있을 뿐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매일 일상에서 하고 있는 평범한 일들을 나 역시 수단에서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핵에 걸린 아이들에게 약을 주고, 전염병이 돌면 주사를 주고, 또 남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내가 할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 제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나는 그 곳에서 매일 작은 희망과 만납니다. 조금의 약과 주사로 뼈가 앙상한 아이의 볼과 엉덩이에 살이 오르고, 죽어가던 아이가 살아나는 기적 같은 일들을 봅니다.
태양열을 이용하여 냉장고를 가동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주사약을 보관할 수 있어 올해는 홍역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41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브라스밴드가 악기를 만진지 겨우 2주 만 에 멋진 곡을 연주하는 기적들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이들을 다 심어놓으셨고, 나는 그저 이 자리에 같이 있는 것뿐이구나 생각합니다.

“인제인성대상은 인제인의 인류애의 표시”

오늘 주신 이 상의 주인공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이 상은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오지 수단에서 병으로, 또 굶주림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주는 인제인들의 인류애의 표시이고, 전쟁으로 지친 이들에게 보내주는 인제인들의 따뜻한 손길과 포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을 나의 어머니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허락한다면 이 상을 나의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10남매의 9번째 아이입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지고 어머님 혼자서 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의대를 다니는 6년 동안 장학금 한번 받지 못한 아들의 학비를 대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고, 또 의사 아들을 통해 영광을 보고 싶으셨을 텐데 한번도 저를 원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어머니에게 감사하다는 말씀과, 또 이 상이 어머니에게 큰 보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이 자리가 무척 고맙고 행복합니다.

신부의 꿈,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

어릴 때 성당 근처에 살았고, 또 어릴 때부터 신자였고, 신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의대에 진학하고 인턴을 마칠 때까지 잠시 그 꿈을 잊고 있었는데,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어릴 때 꿈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 위의 형님이 신부가 될 때 어머님이 무척 서운해 하시는 걸 보고 참았는데, 1991년 군의관으로 제대한 후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아 샬레시오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내게 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셨습니다. 줄곳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했고, 로마 샬레시오 대학에서 공부하던 1999년 여름, 마음속으로 아프리카 선교의 결심을 굳히고 케냐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수단 톤즈에서 20년 가까이 설교를 하던 제임스라는 인도 신부님을 만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에 빙 둘러싸인 수단이라는 곳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2001년 귀국하여 사제서품을 받고 남수단 룸백 교구의 톤즈에서 선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는 이곳이 천국입니다”

새벽 5시 45분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오전 중에 200~250명 정도 진료를 합니다. 낮에는 쉬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오고, 당장 말라리아에 걸리거든요. 저녁에는 학교를 마친 동네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기타와 피리, 오르간을 가르치고 제가 작곡한 노래와 율동을 가르치는 데, 아이들이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어 할 수가 없어요. 얼마 전에는 한국의 후원회 도움으로 악기와 연주복 등을 후원 받아 연주회도 가졌습니다.
수요일에는 이동진료를 나갑니다. 톤즈에는 진료소가 ‘국경 없는 의사회’가 하는 곳과 이곳 두 군데 뿐이거든요. 거리상으로는 몇㎞ 안되는 가까운 이웃마을이라도, 도로가 없고 길이 험해서 꽤 오래 걸려요. 부족한 의료인력의 확보를 위하여 마을 별로 1명씩 선발, 의료요원교육을 실시하여 1차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의술교육도 실시하고 있는데 이들과 3인1조를 이루어 아이스박스를 싣고 가서 예방접종도 하고 진료도 합니다.

“배움을 통한 아이들의 변화는 내게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한 달에 한번 나환자들을 찾아가 진료도 하고, 나병으로 판명되는 경우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줘요. 어느 날 모녀가 우리를 찾아와 자신의 딸이 나병에 걸렸다고 했지요. 하지만 진료결과 딸은 다행히 단순 곰팡이질환이었고, 나는 너무 다행이다 싶어 기쁜 마음으로 “당신 딸은 나병이 아닙니다”라고 했더니 그 어머니가 너무 실망을 하는 겁니다. 음식 배급을 받을 줄 알았는데 받지 못해 실망한 것이지요. 너무 안타깝고 슬픈 기억이지요.
하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아요.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충동적이라 그들에게 신부나 수녀는 안중에 없지요. 싫은 소리를 하면 금방 변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배움을 통해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자랑은 아니고 저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좀 있어요. 하나님이 쓰라고 주신 것 같아 아이들을 모아놓고 저녁에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데 그 실력들이 정말 대단해요. 한국에서 보내준 악기와 정식 연주복을 입고 발표회도 가졌지요. 톤즈는 가난한 곳이지만 이곳에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수천 수백 번도 더 했어요. 아이들은 개발을 하지 않은 자연상태로, 조금만 누군가 부채질을 하면 마른장작에 불 붓는 것처럼 금방 타오르는 존재입니다.

후배들에게 바란다.

환자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의사의 기술적인 치료가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지불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도 많을 겁니다. 환자를 대할 때 한명의 환자로 상대하지 말고 인간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면 서로 좋은 결과와 인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요.
그리고 현재 톤즈에는 외과의사가 없습니다. 나는 인턴과정만 수료를 했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함께 봉사할 한국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의지도 되고, 한국말도 할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이태석 신부는 질병과 내전, 굶주림으로 얼룩진 아프리카의 최빈국 수단에서 선교활동 및 의료봉사 등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성직자이자 의사이다.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의사의 길을 포기한 채, 자신의 꿈이었던 신부가 되기 위하여 다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2000년 사제 서품을 받고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지역에서 현재까지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희망을 잃고 죽어가는 오지 주민들과 아이들에 대한 자선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전무했던 의료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주민들과 직접 모래와 시멘트로 병원(진료소)을 지어 매일 200여명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수단어린이 돕기 후원회인「치박치박」을 결성하여 모금운동을 통한 아프리카 수단 오지 아이들과 주민들을 돕고 있으며,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최근에는 학교건물을 재건축하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전쟁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등 교육활동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부로, 인술로 세상을 구하는 의사로서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Medigate 미디어 팀

 

 

 

 

2003년 12월 29일 KBS 1TV 한민족 리포트 아프리카에서 찾은 행복 -

수단 이태석신부

 

 

 

너무나 훌륭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 신부님

 


 살레시오회 이태석 신부님은 의과대학 졸업 후 사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늦은 나이에 다시 신학 대학에 가셔서 늦깍이 신부님이 되신 분이십니다. 


'가난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땅 
아프리카 수단으로 들어가셔서 의료 선교 중이십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수단은 20년이 넘는 
내전으로 땅도 사람들도 너무 피폐해져 있는 상태이고 55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 가뭄까지 들어 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 
헐벗음이 극에 달해 있는 곳입니다 

처음에 이곳을 가보시고 너무나 비참한 가난에 큰 충격을 받으신 신부님은 
그곳에서 '목마르다!'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곧바로 선교지를 수단으로 정하신후 들어가 선교 중이십니다. 
의사이시기도 하신 신부님은 하루에 300여명이 환자들을 
혼자 돌보고 계시며 결핵환자, 
나환자들 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치료해주고 계십니다.
어린이들의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셔서 교육사업도 열정적으로 하고 계십니다. 
또한 음악적 천재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셔서 그곳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해주시며 음악선교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너무나 훌륭한 삶을 살고 계셔서 일일이 열거하지도 못하겠습니다. 
때론 한 끼 식사 값이 될 수도 있는 그 돈이 수단 어린이들의 일 년 양식이 되고  
일 년을 교육 시킬 수 있는 돈이 되기도 한답니다. 
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봉헌임을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출처 : 함께 있음
글쓴이 : 김레지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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