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기는 멧세지

올바로 침묵하는 법:법륜스님

거울닦는 달팽이 2011. 6. 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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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수행자들은 말이 많은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침묵을 더 중시하지요.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왜 그렇게 많은 말씀을 남기셨나 하고 의문을 제가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말을 하려거든 법에 대한 말을 해라. 법에 대한 말이 아니라면 침묵을 지켜라.”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입니다. 스님들은 아침이 되면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합니다. 기러기 떼처럼 한 줄로 조용히 걸어서 집집마다 다니며 탁발을 하지요. 그리고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면 발우를 씻고 가사를 벗어서 접어둔 뒤 조용히 명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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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날은 탁발을 하고 돌아와 식사를 마친 스님들이 빙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어요. 출가하기 전 다들 나름대로의 직업이 있었을 것 아니에요? 한 사람이 “ 야, 나는 출가하기 전에 코끼리 길들이는 일을 했는데, 그 덩치 큰 코끼리를 길들여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냐? “하면서 자랑을 했어요. 그러니 한 스님이 “ 야, 그게 뭐가 어려워? 나는 야생마 길들이는 일을 했어. 펄쩍펄쩍 뛰는 야생마를 순한 양처럼 길들여 내가 말과 한 몸이 되어 타고 다녔어” 하고 자랑하고, 또 한 스님이 “ 살아있는 짐승을 길들이는 게 뭐가 어렵냐? 나는 마차를 몰았는데, 길이 험하고 좁은 곳으로 마차를 몰려면 굉장한 기술이 필요해”라고 자랑을 해요. 그러면서 누구는 활 쏘는 솜씨를 자랑하고, 또 누구는 검술 솜씨를 자랑하고…


이렇게 옛날 얘기로 시끌벅적한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 이들에게 가까이 오셨어요. 한참 정신없이 떠들던 스님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맞이했지요. 부처님께서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뭘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는가?” 그러자 한 비구가 계면쩍은 얼굴로 지금까지 있었던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모여 있을 때 행해야 할 일은 단지 두 가지뿐이다. 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입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첫째가 거짓말을 합니다. (妄語)있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말을 믿고 따랐다가 속았다고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욕설을 하는 경우도 많죠. (惡口) 화가 난다고 온갖 험담과 욕설을 뱉어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지요. 또 사람들에게 비위를 맞추고 아양을 떠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綺語) 그런가 하면 이 사람에게는 이 말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 말을 해서 사람들을 이간질 시키고 결국은 불신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兩舌) 이런 것을 말로 짓는 네 가지 죄업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용도 없고 배울 것도 없는, 아무 쓸모 없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죠. 입을 잠시도 그냥 놔두지 못하고 이런저런 얘기로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잡담 같은 겁니다. 또 음담패설 같은 것으로 희희낙락하며 시간을 버리는 경우도 있구요.
이런 것 보다는 숫제 말을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니 성스러운 침묵이니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수행자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나요? 아니에요. 부처님께서도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건 다 진리에 대한 말씀, 남을 이롭게 하는 말씀, 남을 기쁘게 이롭게 하는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말을 하려거든 진실에 대해서 말하라는 겁니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을 깨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얘기를 해줘야죠. 이걸 법문이라고 해요. 또 괴로운 자에게 위로의 말을 할 수도 있고, 자비의 말을 할 수도 있죠. 이런 말들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말이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말이에요. 이런 말은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말이 아니면 하지 않으셨어요.


말에는 또 알리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말도 해야 합니다. 부부간에 “말하지, 왜 말 안했어? 말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하고 한쪽이 따지면 “ 꼭 말로 해야 할아? 딱 보면 알지” 하고 대꾸하며 싸우는 경우들이 있어요. 물론 타심통이 있는 사람은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안다지만, 99.9퍼센트의 사람들은 말로 표현해 주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가볍게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자기 마음을 상대에게 진실하게 전달하지 않은 채 막연히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나 하고 생각만 합니다. 어떤 경우엔 말을 했는데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죠.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데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어요? 자기 마음은 말을 하지 않고도 알아주기를 바라고, 남의 마음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말을 듣고도 못 알아준다는 얘기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말입니다. 말은 굉장히 소중한 거예요. 이렇게 없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그것을 정확이 표현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바르게, 사실대로, 진솔하게, 쉽게, 상대의 처지에 맞게 말하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들을 때 자기 생각, 자기 방식, 자기 관점을 갖고 듣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본 뜻이 왜곡되기가 쉽지요. 그러니까 말을 할 때는 바르게, 쉽게, 분명하게, 들을 때는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을 내려 놓고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뜻이 정확하게 전달이 돼요.


일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지 한번 봅시다. 아내가 식사 준비가 다 되어 남편에게 식사하라고 얘기할 때 어떻게 합니까?  “식사 준비가 다 됐습니다.” 이건 알림이죠. “ 식사할 시간이에요.’ 이것도 알림이구요.  “식사하세요.’ 이건 알림인 것 같지만 실은 명령이에요.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알림뿐이고, 먹고 안 먹고는 그가 알아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인생에 간섭을 하고 있지요. 언제까지 먹어라. 안 먹으면 밥 치워 버릴 거야. 이런 간섭 말예요. 열심히 식사를 준비해 놓고 도리어 그로 인해 시비가 붙는 거죠.


경전에 보면 부처님을 초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 공양이 준비 되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때를 아소서.” 밥을 먹을지 안 먹을지 그 결정권이 상대에게, 부처님께 있다는 말이죠. 알릴 때는 소리를 내어 잘 알려야 합니다. 이런 말이 아니면 침묵하라고 했다 해서 무조건 입 다물고 말만 안 하는 게 수행이라고 받아들이면 안돼요.


1988년, 올림픽 때 어느 선방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절에 10년 가까이 묵언을 하신 스님이 계셨어요. 그때 한국이 메달을 많이 땄잖아요.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들도 거기에 관심이 있어서, 그 위 암자에 몰래 텔레비전을 갖다 놓고 휴식 시간에 올라가 잠시 보고 내려오고는 했나 봐요. 그랬는데 하루는 이 묵언하는 스님이 도끼를 들고 올라가서 텔레비전을 깨버렸어요. 물론 이 분은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것은 화를 낸 거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나쁘다는 분별을 낸 겁니다. 이것은 이미 아주 험한 말을 한 것과 같아요.
밥 먹을 때를 알리는 것은 침묵과 같습니다. 묵언을 하라는 본래의 뜻은 입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왜 입 을 다물라고 하느냐? 입에서 무슨 소리를 낼 때 남을 해치는 말 아니면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하니까 그럴 바에야 입을 다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입을 다물라는 것은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분별심을 버리는 것이 침묵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많은 말씀을 하셔도 분별심을 내어 말씀을 하신 게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8만 4천 법문을 하셨지만 그러시고도 하시는 말씀이 “ 나는 한마디 말도 한 바가 없다”고 하시잖아요? 분별심이 없는 말, 그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분별심을 일으키면 비록 입을 다물고 이어도 구업 口業을 짓는 것과 같아요. 법다이 말하는 것은 침묵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에게 이익이 되고 기쁨을 주고 위로가 되는 말, 진실을 깨쳐주는 말은 많이 할수록 좋지만, 그런 말이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말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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