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술

<나와 세상의 관계> 내 안에 있는 세상의 감옥을 부수자!!

거울닦는 달팽이 2009. 2.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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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컴 자판기 앞에서 완전히 막막하다..

글쓰는 연습을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생각이란, 결국 아무것도 아닐뿐이라는 가르침이

컴퓨터 자판 앞에 나를 붙들고 있다.

 

<이제껏의 살아온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말해놓고  한달이 지나도록 엄두도 못내다가

두 번째 이 글을 쓰려니, 소심함과 두려움에 글을 쓰기도 전에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도..그래도 한번 해 보는 거야..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극히 드물다...

분명히 굶주리지도 , 비 피할 따뜻한 집도 있는데두 말이야..

단순 생존이 가장 큰 문제였던, 원시시대나 산업화 이전의 인간 상태는 벗어난 상태인데두 말이다..

 

이 시대에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바보 아니면 도둑, 그 둘 중의 하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씀도 기억이 난다.

맞다..

그렇다면, 나는 바보임을 기꺼이 받아 들인다.

그리고, 사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너나 나나 할 것없이 모두 스스로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할수만 있다면, 그 바보들 중의 일부가 만들어 놓은 대부분의  바보들을 가두어 온 눈에 보이지 않은 감옥은 저절로 부서지고, 우리들은 자유로워지고, 우리들은 행복할 수가 있을거다..

 

 

더 쉽게, 더 쉽게 생각해보자.

우리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삶의 온갖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그렇다면 삶의 온갖 것들을 살펴 본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내 마음에 안 든다, 아니, 더 가까이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아닌 나 자신의 능력과 행태가 마음에 안 든다, 부조리와 불공평으로 가득한 세상이 마음에 안 든다, 더 많이 누리고 싶은데, 나는 돈도 없고, 또한 앞날은 더욱 불안하다...등등...

 

일단, 나는 <행복한 나> 가 되기 위해서, 두 가지 관점에서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첫번째는 <나와 세상의 관계>에서 내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나 안의 나> 를 들여다 봄으로써,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래서 <나와 세상의 관계>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내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벗어나서 생각해 볼 엄두를 끝끝내 내지 못한다.

 

현재 모든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괴롭히는 단어..<경쟁>이라는 그 단어 자체는, 끊임없이 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난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말할때 보다는 사회적 동물임을 거부할 때에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ㅠ.ㅠ

경쟁이라는 말은 결국 전투라는 말과 같다..그 말은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야만 하는 게임을 의미한다..

내가 하고픈 말은 바둑판 위의 바둑알과 같은, 체스판 위에 놓여있는 말과 같은 나 자신의 운명을 당연히 받아 들이지 말고, 내 의지로 그 게임판을 내려와서 바라보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체스판 위에는 그 게임이 유지되기 위해서 정해진 룰이 있고, 그 룰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어 오는 동안 쭈욱~ 인간 개개의 삶을 너무나 황폐화시키면서 괴롭혀 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룰에 맞춰 살아야 함을 어릴 적부터 세뇌 교육 받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한 인간을 시간적으로 객체화시켜 놓고 들여다 보자..

 

기원전 4000-2000년 전 경에 살고 간 사람이 있다고 치자..그 사람이 살고 있는 체스판의 룰은 그래도 간단하다. 부족집단 내에 거주하면서 수렵이든 농경생활이든 단순한 생활을 했을 것이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단순법에 의해서 다른 사람의 눈을 다치게 했다면 자기 눈도 꼭 같이 그렇게 해야하며, 선택받은 사제 집단이 있은 유대인이었다면, 아마 무조건 그들의 생산물을 바치기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원시적인 부족간의 다툼으로 죽거나 위생 개념도 없었기에 쉽사리 병원균에 노출되거나, 지금으로선 경미한 병에 걸겨 죽기도 했을 것이고...뭐, 그래도 체스판의 룰은 몇개 없었고, 마음의 고뇌는 컸을 것 같지는 않다..

 

13~15세기경, 중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있다고 치자..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는 날까지, 인간 세상은 하느님에 의해서 영위된다고 생각하며, 모든 생활을 신앙적인 의례에 맞추어 살았을거다..주일이면 교회당에 나가야만 하고, 죄없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마녀라 불리는 사람의 화형식에 참가해서 처형하라고 함께 소리쳤을것이다..만약에 그 마녀라는 사람을 옹호라도 했다가는 그도 죽을 것이니까....자신의 삶은 없다..종교가 자신의 삶을 잡아 먹고 있는 삶이었기 때문에...종교라는 체스판의 룰이 인간보다 더 중요했던 시기이다. 

 

그렇다면, 최근래로  건너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분들이 사셨던 삶이라도 기억해보자..농경사회와 산업사회가 교차하는 시기였고, 대부분 농경민의 생활을 했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해 보더라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체스판 위의 삶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농사를 짓고, 나무를 하고, 빨래를 하고, 가축을 기르고, 홍수나 가뭄이 생기면 여지없이 좌절하다가 다시 일어나고...이 분들의 삶은 먹고 자고 입는 일에 온갖 노동력을 쏟아 붓느라, 인생이 다 흘러가셨을 세대이다..그러다가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몰아 치고, 이 체스판에 실제로 엄청난 전쟁이 일어나면서,역시 개인은 그 게임의 부속품이거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이후 산업화 도시화가 숨가쁘게 이루어지고, 점점 더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는 체스판의 사회적 룰들은, 각 개인들을 더욱 비인간화시키며, 더 커진 공포와 불안 속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이끌어 오고 있다. 현대 사회는 물질이 즉 돈이, 수천년 인류의 무의식을 장악해 왔던 종교보다  훨씬 우위에 올라서 있다.

 

태초에는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되었을 이 인간이란 존재는, 인간의 수가 많아 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룰들을 인간 세상이라는 체스판 위에다 쌓아왔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우리가 말하는 관습, 종교, 제도,교육, 문화라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각 시대에 따라 각 인간이 사는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이었고, 너무나 많은 엉터리들이 인간을 조종하고 억압하는 룰로 작용하면서, 수천년 이어져 내려져 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대에는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보, 미친사람이 되었고, 마녀를 죽이자고 말하던 집단 안에서 마녀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먼저 죽어야 할 사람이 되었고, 동족을 죽이는 것이 애국이라 떠드는 시대에 생명을 죽이는 것은  애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감옥에 가야하는 룰들이 있어왔다...물론 그 바보요, 그 비신자, 그 매국노들은 참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ㅠ.ㅠ

 

또한 시간적으로뿐 아니라, 공간적으로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볼 때도, 각기 지역마다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힌 룰이 있어,예를 들자면  어떤 지역(이슬람권)에선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가 계명으로 못박혀져 있었다면, 어떤 지역에선 돼지고기는 잔치음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군침도는 먹거리였던 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현모양처 순종적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여인들 뇌에 심어주고 있는 동안에도, 중국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남녀평등사상을 교육시켜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여자를 이상형으로 그들 머리에 심어주고 있었듯이....

 

이렇듯 다 아는 얘기를 여기서 다시 꺼내는 이유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싯점의 체스판을 장악하고 있는 룰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그것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막강한 룰일지라도 엉터리이거나 무가치한 룰이라 판단이 되면, 거기에 나를 맞추려고 애를 쓴다거나 연연해서 질질 끌려다니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수 있기 때문이다.

 

즉,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이 지구상에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은 그 시대와 그 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희비애락했음을 잊지말자는 것이다.

한번 뿐인 삶을, 그 시대 체스판의 룰에 의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빼앗겨야 했고, 한번 뿐인 삶을 그 사회가 요구하는 종교의 억압에 시달리며 강박적 죄의식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했고, 하나 뿐인 삶을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얼굴을 가리는 천나부랭이 속에 숨어 살듯이 하기도 했던 것이, 바보같은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온 인류의 수많은 억압적 룰에다가, <돈이 최고>이라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룰에, 인생 전체를 저당잡혀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요", "부자되세요~ "라는 말이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주는 최고의 말이 되어버린 사회를 바라볼 때 느끼는 비참함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ㅠ.ㅠ

 

 

그렇다면, 인간의 운명은 인간이 만든 인류의 룰에 영원히 허덕이며 살다 가는 것이 다일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싯점의 세상을 냉정히 객관화시켜놓고 바라 보자는 말이다.

시대와 공간을 관통하는 절대의 가치는 놓친 채, 내 귀중한 삶을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달팽이의 세상 읽기> 콘텐츠를 열어 놓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제일 싫고,

현재 내가 놓여져 있는 체스판 위의 문제꺼리들을 꿰뚫어 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한 시대나 일정 지역에만  일어날 수 있는 상대적인 가치와 연관된 문제인지,

인류와 인간 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에 연관된 문제인지를 읽어 낼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과 자유와 진리와 사랑은 다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자유로워져야한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그물망에 얽혀, 천부의 선물인 자유 의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

행복하지 못했던 우리네 삶의 이유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라 생각한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의 체스판을 유지 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음 세대를 교육시킨다..그 교육이라는 것이 인간 정신을 되찾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케 하는 교육이라면 문제 삼지 않겠다.

하지만 인류에게 있어서 아주 오랫동안 교육이라는 것은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군중을 획일화시켜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먹이로 만들어 온 역할을 해 온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가진 자들을 위해 인간을 추리는 거름망 역할을 해온 입시 제도..

대입에 실패했다고 자살하는 사람들...교육제도에 대해서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고, 공부를 했다면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ㅠ.ㅠ

물론 나도 돌아보면 한탄스럽다..내가 받아 온 교육은 단 한순간도 내가 원해서 하는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었다....죽을만큼 하기 싫은대도 인정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한 기억 밖에는..

도대체 인정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진짜로 바보 맞다..나도..ㅠ.ㅠ

결국 학교를 벗어나 내 삶의 반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진실로 책읽고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졌으니까...

 

예수님도 부처님도 내 존경해 마지 않는 안소니 맬로 신부님의 말씀도 깨어나라고, 제발 깨어나라는 말씀이다..무지와 안일 속의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기 때문에, 깨어나서 세상을 제대로 보라고 이르신다..

 

나를 둘러싼 수천년 쌓아온 인류의 감옥을 부수어 그 밖을 나와보면,

있는 그대로의 원래부터 아름다웠던 세상이 보이고,

그제서야 사회적 억압을 벗어난 나만의 행복한 숨쉬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이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지와 안일의, 연약하고 나른한 평온이 더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의 삶을, 인류가 이태껏 만들어 온 모든 것들을,  바깥에서 바라보자..

마치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인간의 눈으로 당연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새로이 바라보자..

바다를 처음 보는 사람은 환희에 젖는다. 그러나 매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 하는 어부는 바다가 그저 생존의 일터일 뿐이기에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태초의 인간인양, 맨 처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 보자..

인류가 만들어 온, 인간을 억압해온 모든 체스판의 룰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치도 않은 것 같은 시각으로 살아보자..

 

그럴 때에, 매일 매일 다르게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 새들의 지저귐, 따스한 햇살, 내리는 빗줄기,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 심지어 우리가 매일 보는 사물의 색상들마저도 어디선 온것일가..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감탄을 하게 된다..그냥 아무 이유없이 살아 있음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 아이일수록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더 많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 눈으로 주변을 보게 될 경우,  매일 같이 쏟아지는 불편한 뉴스들을 접하게 될 때에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가 있게 되고, 그 안에서 참됨과 그릇됨을 파악 하는 일이 좀 더 쉬워지며, 물론  슬퍼하고 아파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휘말려 내내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목을 <내 안에 있는 세상의 감옥을 부수자>로 정하면서 떠오른 노래가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이다.

 

집(내면)에선 아내의 억압에 짓눌린 교사는,

자신이 권력자가 된 교실에서는 아이들을 조롱하고 폭력을 가하며, 그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풀어댄다.

인간이기를 거부당하고, 획일화를 강요당하며 꼭 같은 가면을 쓴 채, 정신적 죽음의 대열을 향해 로봇처럼 행진하던 아이들결국,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 (동영상 2:22)이라고 외치면서,

학교를 불지르고 벽을 헐어버리던  Pink Floyd의 동영상을 올려 놓는다.

(문법적으로 중간에 no가 들어가지 않아야 할 것 같으나, 실제 가사는 이러함. 아마 강조하기 위한 듯..)

 

내 안의 <인류의 감옥>을 만들었던, 두터운 벽 허물기를 를 두려워말고 시작해보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고유한 나>로서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물론, 바깥 세계의 사람들에게 내 모습은 변한 것이 없어 보여도 상관없다..(사실 내가 그렇다..^^:)

 

현재의 나는 내면의 숨통이 트인 느낌에,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행복함을 많이 느끼면서 지낸다..*^^*

비록 달팽이의 껍질을 지니고 있지만, 하루하루 내면의 껍질을 벗어가고 있으니까...

 

 

 

<계속>다음에는 <내 안의 나>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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