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술

행복하기 위한 최우선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거울닦는 달팽이 2009. 3. 2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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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달만이다.

이 게시판의 글쓰기가 이렇게 힘들다니...ㅠ.ㅠ

다 아는 얘길 하는 건 아닐까...내가 무얼 쓸 수 있을까..하는 막막함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ㅠ.ㅠ 

 

   징징거리지 말고, 일단 한번 해봐.. 일어나!! 할 수 있어!!! 

 

 

 

일단, 앞에서 얘기한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해서, 첫번째는, 자신이 사는 시대나 공간 안에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그 시대의 풍조나 관습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로울 수가 있으며,

 

두번째는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상황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들도 사실은 그 외부적 요인 자체보다는 그것을 해석하는 <내 안의 나>가  생존 본능으로 인해 각인된 무의식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항상 앞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즉,그것은 생존을 위한 방어 기제일 가능성이 더 많을 뿐,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컨트롤하는 방법을 익히다보면 크게 문제 될 거 아니라는 얘기였고...

...

 

오늘은, 내 삶이 진정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요인이 무엇인지 얘기해 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어쩌면 지금 당장 부족한 것을 떠올릴 것 같다.

돈, 능력, 명예, 멋진 외모, 냉철한 지성과 예민한 감성 등등...

꽤 많이 멋진 가치들이 떠오른다.*^^*

 

난, 일단 내 삶이 행복하기 위한 첫째조건으로 <자발적 선택>을 꼽고 싶다.

왜냐면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된 시점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행동하고 살아온 나보다는, 내 스스로 원해서 선택하고 행동하면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나의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면,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본다..ㅠ.ㅠ )

 

내 40년의 세월을 살아온 동인은 거의 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나를 맞추려는 시도였을 뿐이었고, 그런 내 행동들에 대해서도 진정 내 자신이 원했다는 듯이 꾸며서 행동하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도 정말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난 거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 소공녀의 세에라,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바부팅이 캔디,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랑 나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라 온 거 같다...이건 책읽기의 부정적 효과가 아닐까? 그리고 그 흉내는 내가 무척~ 사랑 많이 받고 살아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크흐흑..ㅠ.ㅠ  (지금도 내 지인들은 나를 밝고 명랑 쾌활한 캔디의 모습으로 기억한다..그런 나에 대해서 딱 한명 의문을 제시한 남학생이 있었다. 너의 그늘을 찾아내고 싶다던...-.-;; 대학시절에 말이다..나는 그 의문에 대해서도 뭔 말인지도 이해를 못했다..ㅠ.ㅠ 암튼, 습관이 되어서인지 지금도 난 여전히 무척 잘 웃고 잘 떠든다...^^ )

 

유년기를 지나, 학창시절이 시작되면서 난  정말 한번도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한 적이 없다.

오로지 좋은 성적을 받아야 어른들에게 사랑받고 친구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던 공부를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해서 시험을 치며 지냈고, 그렇게라도 성적을 받아 내느라고 마음은 항상  돌덩어리가 하나 얹혀 있은 채 살았지...ㅠ.ㅠ

(아마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게 지내는 거 같다..경쟁에 더 치열해져서 더 힘들어 보인다..ㅠ.ㅠ )

그러면서도 나는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평상시에 열심히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무척이나 의지박약인간이라고 내 자신을 맘에 안 들어했고, 항상 불안했었다..ㅠ.ㅠ 

 

대학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했던 바와 전혀 다른 공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그저  졸업하면 교사자격증이 나오고 취업이 된다는 이유로 울며 겨자먹기로 다녔었지...왜냐면 세상 사람들의 말로는 철밥통(?) 내지는 선망하는 직업이었으니...내가 어떤 역경에도 그 일을 계속할 사명감이 있었던 걸까? 아니었기에,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회의와 미안한 마음이 합쳐져서, 급한 결혼 후, 여기로 떠나 올 생각을 가능케 한 것 같다.ㅠ.ㅠ 결국 대학 공부도 내 선택은 아니었다. ㅠ.ㅠ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내 삶은 더욱 내 것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경상도 집안의 맏딸이었으니, 무조건, 무조건!! 시어른에게 잘 해야만 하고, 남편을 훌륭하게 내조할 수 있어야 된다는 내 무의식이 나를 다그쳤다.

하지만 영어와 담 쌓은 상태의 나는 남편의 학위 공부에 참고자료 등을 찾아 준비해 줄 수준도 못 되었고, 지도 교수나 선배들과의 관계가 원할하게 만들 수 있는 적극적인 성격은 더더욱 못 되었고, 이북 출신의 강한 성격의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죽어도 이해가 안 되는 그 분의 언행에 맞추어 보려는 내 시도는 나를 거의 초죽음으로 몰고 갔었다..ㅠ.ㅠ 그때엔 정말 미웠다..시어머니도, 시누이도...

(하지만 이 고통을 극복하려던 내 시도가 결국 나를 카톨릭 신자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이젠 시어머니를 세상의 누구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신앙때문이 아니라, 내 삶이 누구 한 사람때문에 괴롭힐 당할 정도로 나약한 것일 수는 없다는 자각때문이라고나 할까...)

 

더군다나 한국보다도 더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은 여기 미국 생활에서의 전업주부라는 내 모습은 .나로서는 정말로 내 비참함을 극대화시켰지..ㅠ.ㅠ 티비에서 제시하는 멋진 유학생활의 모습은 전혀 아니올시다..였고,  무엇보다 여자도 항시 자기 일이 있어야 한다고 하신  친정 아버지의 말씀, 그리고 대학시절  읽었던 사회과학 서적들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내 입에 들어갈 밥값은 내가 벌어야만 인간이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두 아이를 낳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키워내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 제일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할 수 있는 그 시기에조차, 나는 항상 언제나 우울했었고, 병도 없는데 몸도 항상 아팠다..

(그래도 아이들 데리고 바깥에 나갈때에는 방실방실 잘 웃고 행복한 척도 잘 했다..ㅠ.ㅠ )

 ...

그렇게,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게만 살던 내 삶에 극적인 변화를 주기 위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내 자발적 선택의 최초의 사건일게다.

세상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도 죽은 듯이 사는 내가 죽도록 싫었기에,

나는 미국이라는 이 곳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은 듯이 일하면서 살아보고 싶어졌었다.

그리고 마침내 살 떨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일을 벌렸고...

그렇게 3년을 내가 벌인 일을 통해서 세상을 직접 몸으로 겪고, 느끼는 기회를 갖게 되었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기에, 엄청난 고통을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견뎌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약육강식의 세상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목격해 오던 삶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삶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내 겉모습은 그때가 결혼한 이후로 제일 반짝거리고 예뻤던 것도 같다..^^;;)

그치만 내가 선택한 일을 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동안에 남편과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기 시작했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모습이었지만, 역시 행복하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그때가 불행의 클라이막스쳐럼 느껴진다..ㅠ.ㅠ

 

 

 

 

많이도 다투고 또 다투던 그 어느 날 밤,

남편이 내뱉은 한마디가 내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말이었는데도 그 말은 내 정수리를 도끼로 내려쳐 쪼개는 듯이 아팠다. 으허헝헝..ㅠ.ㅠ

 

"그만하라구, 제발~ 세상이나 사람들을 원망하지 말고, 너 살고 싶은대로 살면 되잖아아아아!!!!!!!!!!"

이 한 마디의 말은 ,내 머리 속에 천둥, 번개가 되어 꽂혔고, 불이 버쩍거리면서 내 머리속은 아득한 낭떨어지에 떨어지는듯 하더니, 마침내 천지개벽이 일어났고, 결국은 그 속에서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세상을 그렇게 이쁘게 봐 줄려고 노력해도 안 되고,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할려고 해도 상처받고..ㅠ.ㅠ

그러지 말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라는 거다!!! 

오오오, 신이시여~~ㅠ.ㅠ

 

그렇게하여 내 삶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강림한 것이다. ㅠ.ㅠ 

세상에 날 맞추고, 주변 사람들에게 날 맞추고....맞추고, 맞추고,또 맞추고..끝도 없이 맞추고..헉헉헉..ㅠ.ㅠ

그래도 난 안 행복했어...ㅠ.ㅠ

그래, 이젠 그냥 내가 살고픈대로 살고, 그 결과에 책임지고, 세상도 타인도 원망하지 말고 사는거야..

그렇다면 내가 맞추려했던 세상은 무엇이고, 산다는 건 무엇이고, 인간이란 도대체 워지??...

내가 원하는 것은 뭐였지? 그럼, 나는?? 등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난, 그때부터 서서히 내 살고 싶은대로 살고, 내 선택에 책임진다는 각오로 살아오고 있다..^^;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졌고, 내 일상의 날들도 작은 플랜을 짜서 누가봐도 소소한 성취지만, 난 그것들에 보람과 즐거움과 감사를 느끼는 나날들을 지낸다..

시댁에도 내 마음이 내키는 만큼만 하고, 욕하시든 흉보시든 상관없이 내가 받아낼 각오를 하면 되는거구,

사람들과 세상의 요구에도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고, 흉을 보건 그로 인한 손실이 있건, 내 책임이니 받아 들인다는 생각으로 지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어른께는 내 마음이 더 잘하고 싶어지고,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 한계를 확실히 그어놓고 표현하고 지내니까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지더라는 거다...*^^* )

 

물론 그 사이의 내 노력도 적지는 않았다.^^;;

삶괴 죽음에 대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가 이런 저런 독서를 다시 하게 만들었고, 

2년여 기도 바치기, 부부 피정 프로그램(ME)을 다녀오기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독서를 통해서 인간과 삶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스스로가 내 삶을 선택을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울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일도 접었다. 접는 일은 시작하는 일보다 더 더 힘들었지만, 내가 진실로 그만두기를 원했기에 내 의지와 힘으로 접었다.

(돌아보면 그 일도 사실 내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원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조언, 내 자신에 대한 기대, 세상의 압박등이 원인이었지..ㅠ,ㅠ )

결국 내 삶에 있어서 젤 중요한 건, 나와 내 가족부터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수많은 눈물을 쏟아낸 후에야 절실히 깨달았고, 또한 나는 집과 바깥 일을 둘 다 해낼 정도의 능력은 결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스스로가 인정하게 되었다.. ㅠ.ㅠ

이젠 집에 쌀과 우유가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전업주부라는 내 삶을 끝까지 고수하고 싶다.

이게 더 내 적성에 맞고, 이번엔 그야말로 완전한 나의 자발적 선택이다... *^^*

 

수년전의 집 안에서 우울하던 나와, 현재 꼭같은 전업주부의 모습에서 행복할 수 있는 지금의 나...

똑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음은, 그것이 본인의 자발적 선택인지 아닌지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전업을 원하는 사람은 맘 편히 전업일 수 있게, 사회생활을 원하는 이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사회구조적인 장치가  마련되는 날이 언젠가 올것이라 꿈꾸어본다...)

...

...

 

유인원과의 뇌구조 면에서는 겨우 1% 미만의 차이점을 보인다는 인간이, 

유인원과 다른 인간일 수 있음을 가능케 한 요인은 <자유의지>를 지녔다는 글에 무척 공감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부모의 극성으로 최고의 대학, 최고의 직장을 다니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고 고백하던 어느 30대의 얘기를 들었을때에도, 그의 삶의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었음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을 했었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대부분 사람들의 삶을 곰곰히 들여다보면 한결같다.

자신의 삶의 선택권이 자기에게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부모가, 사회가 요구하고 제시하는 것에 자신을 맞추려 애쓴 삶이었기에,

꿈꾸고 희망했던 그 고지에 막상 올라도 전혀 행복하지가 않고,
도리어 허무감을 느낀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인 것 같다
.

 

내 삶의 반을 살아왔다.

나는 이제 이전의 인류가 내게 요구해왔던 우매한 사회화의 그물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나로서 나머지 삶을 살고 싶다.
한마디로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시간들은 자유무역주의라는 세계 경제의 틀에 의해, 무한 경쟁이 각 개인의 삶을 끝도없는 욕망의 덩어리로 만들어온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본주의의 최정점의 시대였고 그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과학만이 최고의 학문이라고 여겨지는 맹신의 시대이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시대의 풍조가,
한민국의 가치가, 내 부모의 소망이 마치 내가 원하는 나의 인생인 듯 생각했었고,  그 사회적 세뇌에
나를 맞추고 길들이느라, 진정한 나와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기는 커녕 거기에 맞추느라 헐떡거리면서 괴롭게 살았던 것 같다..ㅠ.ㅠ

 

이젠, 세상에 길들여진 나가 아니라,<애초의 나> <원래의 나>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우선시 될 것이며, 어짜피 미래의 삶이란 모를 뿐이며,

그래서 나는 매일 매일을 내가 지내고 싶은대로 내 나름대로 충실히 보내는 것으로 행복감을 맛보고 지낸다.

 

비 피할 집 있고, 굶지 않고 밥 먹으면 행복할 수가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피곤하다 느껴지는 마당에 혼자 있을 수 있으니 좋고, 인터넷이 있어서 책도 찾아 읽고, 음악도 듣고...그러니 결국 난 행복하고 좋다..*^^*

원치 않는 고립이 아니라, 내가 선택자발적 고독이기때문이리라.(혼자 있는 시간이 소모적이고 불편한 만남들보다 나를 더 풍성하게 만들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또한 심각한 부부갈등을 거치면서, 처가나 아내가 능력이 있어서 든든한 빽이 되어야 좋아한다는 현대의 많고 많은 남편들 중에서 나의 남편은 아무런 이유없이 언제나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었다는 사실깨달았을때엔, 온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지고, 삶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기 시작했었다. 그리하여 나 또한 남편에게 진실로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어졌다는... 그것이 이제 내 자발적으로 선택한 내 인생의 새 목표가 된 것이다.


어쩌면 자발적 선택이고 나부랭이고 상관없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자기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라고 말한 빅톨 위고의 말도 참으로 와 닿는다.

세상이 내게 요구한 욕망과 욕구가 내 불행의 원인임을 알았기에, 그것에 휘돌리지 않고, 

나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내면의 자신감을 제일 먼저 키워주고 싶고, 

부모나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선택하는 삶을 살면서, 

인생을 배우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이 넋두리 같은 내 글을 읽는 분들도, 작은 일부터라도 진실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매 순간, 매 시간들을 살고, 그것에 책임 질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살아가길 간절히 바래본다. 

삶이 더욱 충만해 질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인간은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살 때에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쉬운 얘기를 길게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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