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파워클래식] '조르바' 읽고 사표 던졌다, 자유다… 후회? 두려움? 개나 물어가라지

거울닦는 달팽이 2012. 5. 4.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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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카잔차키스는 자신있게 말한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내켜서 살고있나?
물레 돌리는데 방해라며 손가락 자른 조르바가 추구하는 건 진정한 자유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이럴 줄 알았다면 이 나이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는 게 아니었다. 매번 이름 참 특이하다고 느꼈던 조선일보의 어수웅 기자가 일본에서 안식년을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 내게 연락해 '고전을 다시 읽자'라는 취지라며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할 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승낙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난 이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무척 괴로워했다. 이 느닷없는 '자유'에 대한 망상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리스인 조르바'를 네 번 읽었다. 매번 조르바가 이야기하는 자유의 의미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처럼 진지하고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

조르바가 이 책의 주인공(카잔차키스)을 처음 만난 날 함께 일하자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주인공은 묻는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는 아주 간단하고도 단호하게 말한다. "자유라는 거지!"

난 올해로 꼭 만 50살이 되었다. '자유'와 같이 철없는 단어는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내 나이에는 '안정' '품위' '경륜' 뭐 이런 걸 생각해야 하는 거다. 그러나 조르바는 나처럼 소심하고 비겁한 주인공에게 자꾸 묻는다. 자유롭냐고. 물론 자유롭다며 우기는 주인공에게 조르바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아니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고향 그리스를 떠나 74년 생애를 바람처럼 세계를 떠돌아다닌 '꿈과 여행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이다. 조르바는 작가 카잔차키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실존인물이다. 카잔차키스는 그와 함께 지냈던 날들을 기억하며 '자유'에 관한 실존적 질문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자세히 기록했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조르바식 자유에 기분이 통쾌해진다. 그러나 도대체 조르바가 이야기하는 자유가 뭔가에 관해 논리적으로 캐묻기 시작하면 조르바는 바로 이렇게 쏘아붙인다. 그따위 어설픈 생각은 '개나 물어가라지!'

자유는 논리나 사고가 아니라 행동이라는 거다. 조르바와 동업한 광산업이 망한 후 주인공은 바닷가에서 조르바로부터 춤을 배운다. 미친 듯 춤을 추며 마침내 자신을 묶고 있던 그 긴 줄에서 풀려나는 해방감을 맛본다. 먼 훗날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버렸을 때 자유는 바로 그 '춤'이라는 행동으로 구체화되었다고 기록한다.

자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과 '~을 향한 자유(free to)'.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의 '소극적 자유(free from)'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도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질그릇을 만들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조르바식 자유가 '진정한 자유(free to)'다. 추구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아름다운 가치를 위해 자신의 손가락 정도는 자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감동은 명확하다. 도대체 '내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도대체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난 '교수'를 내켜서 한 게 아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그토록 '내키질 않아' 매번 신경질만 버럭버럭 내면서도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의 달콤함에 지금까지 온 거다.

느닷없이 다가온 '자유'라는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 난 얼마 전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날부터 계속 후회하고 있다. 오늘도 난 일본 나라시의 차가운 방바닥을 뒹굴며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다. '아니, 이런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막막한 자유로움에 '쫄고 있는' 내게 조르바는 또 그런다. 그따위 두려움은 '개나 물어가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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