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장사치의 정치, 이명박과 트럼프

거울닦는 달팽이 2016. 8. 1.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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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불구가 된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아버지는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부동산 임대료를 걷을 때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집주인 노릇은 멘탈이 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트럼프는 회고한다. “아버지는 초인종을 누른 다음 문 옆으로 비켜섰다. 이유를 물었다. ‘가끔 문에 대고 총을 쏘는 사람들이 있거든.’”

초등학교 시절 트럼프는 공격적이고 단호한 아이였다. 2학년 때는 음악 선생님이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선생님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 사건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자립하려는 생각이 있었으며 폭력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 생각을 알리고자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에 와서는 주먹 대신 머리를 쓰려고 하는 점이 바뀌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신문 만화나 스포츠 면을 읽고 있을 때 트럼프는 연방 주택관리국의 저당권 상실 명단을 살펴보곤 했다. “정부에서 융자를 받았다가 저당권을 잃은 건물의 목록을 살피는 취미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노린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트럼프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을 꿈꾼다. “그래야 상대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가령 고층건물을 지을 부지를 확보할 때 조금씩 매입해서 하나의 크고 가치있는 부지로 합친다. 이때 기밀을 유지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하려는 일을 땅주인들이 알면 훨씬 많은 돈을 받아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부동산 투자자에서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마침내는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됐다. 리얼리티쇼가 현실이 됐다. 다시 트럼프의 말. “내 이름은 세계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기는 법을 안다. 나는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 내 이름을 새기는 명판식을 할 때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가 한 말을 좋아한다.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미국에서 트럼프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음을 알립니다’라고 말했다.” 부동산으로 성공해 정치가가 되어 볼 야심을 갖고 있던 친구에게 한 조언도 보자. “이쪽저쪽을 따질 게 아니라 이긴 쪽에 붙어 그쪽에 충실한 사람이 되라.”

앞의 이야기들은 트럼프가 지은 두 권의 자서전 <불구가 된 미국>(김태훈 옮김, 이레미디어, 2013년), <거래의 기술>(이재호 옮김, 살림, 1987년)에 나온 것이다. 여기엔 조금의 과장도 없다. 트럼프의 말과 글들은 기존의 정치 문법을 뛰어넘는다. 직설적이다. 폭력에 가까운 현실의 힘과 경제적 성공을 숭배한다. 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좋아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트럼프는 사회계약보다는 매매계약을 사랑한다. 절차적 정의보다는 결과중심적이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 체계를 훼손한다. 철거민, 소상공인, 노점상, 환경운동가, 학생운동가, 체육인 등 갖가지 직업을 끌어다대며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던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처럼 트럼프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한다.

이런 정치를 나는 ‘상인정치’라고 부르겠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가 말했듯, 단기적 쾌락을 선호하고 눈앞의 선거에만 집착하는 “상인형 자본주의 체제”다. 이런 정치질서 아래서는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되고, 경제적 불안정성은 극대화되며 사회적 격차는 심화되고 환경적 재앙은 되돌릴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지속불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충동 정치다.

트럼프의 상인주의 정치관은 한국에서도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에게는 엠비(MB)가 있었다. 극단적 상업주의 가치 체계는 공적 책임 영역을 붕괴시켰다. 트럼프와 차이가 있다면 극단적 개방주의였다는 점뿐이다. 다시 근심이 생긴다. 트럼프의 세계관을 보수정치의 새로운 트렌드로 보고 한국의 보수진영이 내년 대선에서 상인주의 정치의 복권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것.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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