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열심히 살아도 불행한 이유, 소설가 김형경이 답하다-소중한 경험

거울닦는 달팽이 2017. 12. 11.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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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분석을 받은 자신의 경험을 계기로 심리학 분야에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쌓게 되었고, 

작가로서 이를 쉽게 풀어 쓴 심리엣세이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깨닫고 공감하고 

스스로 자신의 심리를 이해하게 만들어 준 작가...


그녀가 문득 궁금해져서 검색을 했더니, 이 인터뷰가 있어서 퍼 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행은 자신을 알아가는 여행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녀야 말로 그런 여정을 잘 꾸려온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것 같다.

잘 나이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녀의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나를 많이 알게 된 것도 참 고맙다..

<소중한 경험> 평범한 제목의 평범하지 않을 듯한 이 책도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진다...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그녀의 칼럼 <김형경의 뜨거운 의자>를 찾아 읽어 본 것도

오늘 하루 큰 즐거움이었다. ^^

 


소설가 김형경이 새로운 책을 냈다. <소중한 경험>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책을 보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너무나 평범해서 정말 이 제목이 맞나 싶었다. 표지조차도 그다지 색다를 것이 없었다. 여자의 얼굴에 비유하자면 눈썹조차 그리지 않은, 화장기 없는 수수한 맨 얼굴과 같다고 할까. 온화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웃음을 띤 그런 여자의 분위기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대학 때 알고 있었던 소설가 김형경의 책은 결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짙은 화장을 하고 담배를 문 채 아주 예민하고 까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소설가 김형경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를 만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쉽게 버럭하고 툭하면 까칠한 당신…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 김형경을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국의 문단에서, 한국소설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누군가에게 여성작가라는 이름표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소설가 김형경은 한국의 여류문학에도 큰 획을 그었을 만큼 굵직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첫인상이란 무서운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기실 그렇다. 대학 시절 처음 읽었던 김형경의 소설은 분명 날카롭고 뾰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종종 소설의 문체나 분위기를 소설가의 모습과 일치시킬 때가 많다. 그래서 소설가 김형경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차갑거나 까다롭거나 예민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의 첫인상이 대부분 그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페에서 처음 만났던 소설가 김형경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수더분한 머리 스타일에 해사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목소리나 몸가짐에서는 특유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보통의 작가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마지못해 포즈를 취하거나 쑥스러워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웃어달라는 억지스러운 요구조차 건네기에 앞서 웃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심지어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다는 게 무색할 만큼 동안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그동안 오래도록 품속에 갖고 있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0년간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고 보살피는 심리에세이를 써왔다. ‘독서성장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소중한 경험>은 지난 시간 동안 소설가 김형경이 밟아온 행보를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그녀는 지난 2004년부터 후배 여성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을 가졌다. 한 두 개로 시작했던 독서 모임은 어느덧 일곱 개로 늘어났고, 연령대도 20대 초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아울렀다. 이런저런 물음을 띄우기도 전에 대뜸 그녀가 먼저 질문을 던져왔다. 책에서 어느 대목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느냐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책장을 쉬이 넘기기가 힘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게 저려왔기 때문이다. 그저 외면하기에 바빴던 내면의 얼굴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듯 했다. 읽는 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자꾸만 덮어버렸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에 두렵기도 하고 쑥스러워서였다. 그만큼 이 책에는 숨겨왔던 내면을 오롯이 들여다보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꽁꽁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초가집의 사립문 열리듯이 스르륵 무장해제가 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녀가 던졌던 질문으로 들어가 <소중한 경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꼽자면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노련한 통찰력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행동과 그 이면에 숨은 마음들이 살갗에 직접 와 닿을 만큼 깊은 공감을 전해줬다. 처음에는 소설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저 사람들의 심리나 내면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바늘처럼 찌르고 집요하게 간파하는 그녀의 통찰력은 분명히 남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독서 모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과거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고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20대에는 늘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그게 문제가 되면서 2년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게 됐죠. 그렇게 치료를 받고 난 뒤 제 자신은 물론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누군가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혹은 제 잣대로 평가하는 마음이 싹 사라졌죠. 아주 이상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되기까지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젊은 시절에는 시기심도 어마어마하게 갖고 있었어요. 저는 특히 글 쓰는 재능을 갖고 싶어서 재능 있는 작가들을 부러워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카잔차키스(Kazantzakis)와 같은 작가의 책을 읽으면 정말 죽고 싶을 때가 많았죠. (웃음) ‘어떻게 이렇게 잘 쓰나’, ‘어쩜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제가 쓴 글에 대해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결함을 저는 알고 있잖아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저의 어떤 작품에 대해서도 만족을 못했던 거예요. 또 누군가로부터 부적정인 의견을 들었을 때는 ‘여러 날 고민하고 쓴 내 작품에 대해 어떻게 한번 읽고 평가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하지만 정신분석을 받은 뒤로는 이런 마음조차도 싹 사라졌어요. 저의 내면을 이해하고 나니까 그러한 마음이 근거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소설가 김형경은 정신분석을 받았던 과거나 불행한 생각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젊은 시절을 고백하는데 있어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만큼 단단하고 견고한 자아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것은 남의 의견을 뭉개고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말하는 아집이 아니었다. ‘해봐서 다 안다’는 식의 꼰대스러움도 아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렇게 된 거라며 가볍게 눙쳤지만 그것은 분명히 세월의 흐름만으로 될 일은 아닌 듯 보였다.

그녀에게 <소중한 경험>이라는 책 제목에 대해서 따져(?) 물었다. 일부러 가장 평범하고 쉬운 것으로 지었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한번 들었을 때 잊기 힘든 제목의 경우 아주 평범하거나 매우 특별해야 하는데 그 동안 <천 개의 공감> <만 가지 행동> <좋은 이별>과 같은 것을 지었다면 이번에는 너무 쉬워서 잘 기억이 되는 것으로 짓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독특한 제목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필자로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에세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읽기에 따라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고, 심지어는 육아서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해 소설가 김형경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오래 전부터 무언가에 경계가 없었어요. 보통 사람들은 ‘시는 이래야 한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는데 저는 왜 그래야 하나 생각했거든요. 대학 시절 선배들은 제가 시를 써놓으면 ‘이 시는 너무 산문적이다’라고 했고, 소설을 써놓으면 ‘이 소설은 너무 시적이다’라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고자 했어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거든요. 사실은 그런 자유로움이야말로 창의성이라 생각해요. 재능이 있으면서도 자유로움을 갖지 못해 자신의 재능을 틀 속에 가두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죠.”

책을 쓸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에 대해서도 물었다. 소설가 김형경은 어떤 글을 쓰든 늘 독자의 입장에서 쓴다고 했다. 독자가 자신의 글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느냐를 염두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정신분석을 드러내놓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이 대부분 전문적인 용어라는 게 이유였다. 대부분의 정신분석 전문가들은 전문가의 목소리로 말을 하지 않나.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쉬운 말로 쓰인 그녀의 에세이가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삶이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면? 가면 뒤에 숨은 진짜 ‘나’를 만나라

앞서 육아서에 비유했을 만큼 이 책은 많은 사례에서 생애 초기의 양육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가 김형경은 독서 모임에 참여했던 이들의 불편한 심리가 대부분 생애 초기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애 초기에 형성됐던 정신의 구조와 생존법으로 인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심리적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제대로 점검하거나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불행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인생이 망가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와 더불어 그녀가 책을 통해 가장 강조했던 것은 바로 ‘의존성’이다.

“우리 사회는 여성들을 의존적으로 키우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겠지만 저 때만 해도 어려서는 아버지, 커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여성들의 삶이라고 배웠어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고요. 그래서 중년 여성들의 삶이 어려운 것 같아요. 모든 힘과 중요한 것들, 안전 등이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하니까요. 늘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남자 하나만 잘 만나면 인생이 전부 해결된다 생각하고, 심지어는 남자가 다 해주고 공주처럼 가만히 있으면 그것이 마치 성공한 관계 맺기라 생각하죠. 마님과 돌쇠처럼요.

저는 연인이든 부부든 싸우는 이유가 둘 중 누군가의 의존성 때문이라 생각해요. 부모와 맺었던 관계를 다시 맺으려고 하니까 다들 너무 아이처럼 싸우는 거죠. 특히 여성들의 경우가 그래요.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서 살 수는 없어요. 사회 안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공유하면서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본성적인 측면이죠. 이러한 의존성은 서로 역할분담을 통해 아울러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한 의존관계를 맺도록 돕고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의존성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너무나 나약해서 누군가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 두 가지의 의존성은 서로 다른 것이거든요.”


그녀는 심리치료의 핵심을 더럽고 못나고 추악한 자신의 얼굴을 인정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외면하고 싶고 부끄러운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 동안 잘해왔다는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고도 설명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화분 속에 꽉 끼여 있었던 흙처럼 말이다. 왜 이런 흙은 화분에서 번쩍 꺼내 들어도 화분의 형태와 모양을 가진 채로 딱딱하게 굳어있지 않나.

<소중한 경험>에서는 지난 10년간 독서 모임에서 읽어왔던 정신분석관련 서적의 추천목록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추천목록의 독특한 점은 시나 소설 대신 오직 정신분석관련 서적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밝힌 이유는 단순했다. “독서 모임에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정말 책을 읽고 심리치료가 되는지의 여부였어요. 그런데 시나 소설은 많은 이야기를 읽어야 아주 작은 분량의 치료 이야기를 얻을 수 있거든요. 정신분석관련 서적은 저자가 직접 치료한 치료 사례를 무수히 담고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의 효과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고요.”

그녀는 이 책들을 꾸준히 읽은 덕분에 실제로 정신분석을 받았을 때 더욱 빨리 자기 성찰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러한 사전지식 없이 무작정 정신분석을 받게 되면 상당히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된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독서와 정신분석을 통해 자기성찰을 마친 이후에는 과연 어떤 삶을 이어가야 할까.

“정신분석을 받는 다는 일은 유년기에 만들어진 생존법과 정신의 구조를 해체하는 일이에요. 그동안 갖고 있었던 생의 비전이나 성격이 전부 해체되는 거죠. 내 꿈이 아니라 실은 엄마의 꿈이었다는 것, 원래 내 성격이라 생각했던 것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고, 내면의 불편이 해소돼요. 이러한 과정 이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새로운 삶의 비전과 목표를 만드는 거예요.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이 강조한 것은 종교였고요. 융은 중년기 이후에 종교적 성향을 갖지 않으면 마음의 회복이나 안정 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봤거든요. 어떤 종교든 나름의 금기와 삶의 방법, 큰 비전을 제시하잖아요. 그래서 저 역시 사람들에게 늘 종교를 권하고 있어요.”


소설가 김형경은 정신분석을 받고 독서 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이해하는 관점을 넓히다 보니 자연스레 소설을 쓰는 데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20대 시절에 썼던 글을 완전히 예민한 신경증 환자의 언어였다고 고백했다. 늘 마음 가득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더 잘 쓰고 싶었고, 재능을 인정받고 싶었고, 더욱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어느 지점에서 힘을 주게 됐고 장식을 하게 됐다고 했다. 반면 이제는 그러한 허영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된 것이 전부 ‘기적’이라고도 설명했다.

소설가 김형경은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3년간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칼럼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일종의 절필선언인가 싶어 괜스런 노파심이 들었다. 하지만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녀의 한숨 섞인 대답에서 자연스레 마음이 놓였다. “얼마 전 친구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어요. ‘나는 죽는 순간에나 한가해질 모양이다’라고요. (웃음)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것은 제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인생이 저를 어딘가로 끌고 간다는 느낌이에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심리에 대해 얘기할 영역이 있다면 저는 영적 건강에 대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정신분석을 아무리 해도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있거든요. 이를테면 중독이나 강박증, 분노조절 등이 그래요. 앞으로는 영적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넣어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쓸까 말까’, ‘쓴다면 언제쯤 쓸까’, ‘꼭 내가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은 지금껏 책을 내면서 매번 이런 생각을 해왔던 걸요. (웃음)”

그녀는 자신을 성찰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삶을 돌보며 사회의 변화와 성숙을 이끌었다. 모든 것이 인간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늘 세상이 궁금했고 사람들이 궁금했다고 했다. 이제 김형경의 이름에는 소설가라는 본령에 ‘에세이스트’라는 수식어가 더해졌다. 그녀는 분명 삶의 어려운 고비들을 무수히 넘겨왔고, 그 순간을 치열하게 버텨냈으며 결국 새로운 삶을 선물처럼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직접 부딪치고 깨진 끝에 묵묵히 쌓아 올린 그녀의 삶은 갓 세수를 마친 맨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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