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기는 멧세지

[스크랩]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 최승자

거울닦는 달팽이 2009. 8. 27.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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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나희덕의 시배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최승자의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를 배달하며

 

사랑하는 이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사랑의 맹세는 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랑이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 게 있다면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최승자의 시가 비유의 옷을 걸치지 않고도 삶의 진실에 육박하는 힘을 지닐 수 있는 것은 그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시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사랑의 성취나 상실 자체가 아닙니다.

상실을 어떻게 온몸으로 앓으며 완성하느냐가 그 사랑의 열도(熱度)를 결정하는 관건이지요. 온몸이 꺾여서라도 네 꽃병에 꽂히는 것이야말로 한 알의 탄환처럼 사랑을 관통하는 최후가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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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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