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선후배 가운데는 유난히 집사나 장로가 많다. 교회를 많이 다녀서가 아니다. ‘집에 사는 사람’이나 ‘오래 노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1970년대 해직 기자(동아투위·조선투위), 1980년 언론 대학살 피해자, 환란 구조조정자 등 해직자가 워낙 많은 데다 언론계 퇴직이 빠른 탓이기도 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정부 때 이곳저곳에 ‘구제’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와 모두 다시 쫓겨나고 말았다. 바른말을 잘해 기업에 재취업하기도 힘든 이는 대개 깔고 앉은 집을 뜯어먹고 산다. 어떤 선배는 집에 찾아갔더니 “이 집은 사실 강만수 거다”라고 농을 던진다. 목구멍까지 대출을 받아 강만수씨가 회장으로 ‘낙하’한 산업은행 그룹에 거의 넘어갔다는 얘기이다. 서민이 집을 까먹는 것은 아무 대책 없이 노후를 맞는다는 의미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특수한 사정이 있는 분 말고도 빚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부동산 거품이 일 때 탐욕을 부려 집을 담보로 거액을 빌려 집이나 땅을 산 이들이 부동산 경기가 죽어 고통 받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치자. 하지만 다른 욕심 안 부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허리가 휘게 일하는데도 살면 살수록 빚 부담만 늘어나 한숨짓는 이가 많은 것은 정말 문제이다. 월급은 벌써 10년 가깝게 제자리걸음인데 도저히 줄일 수 없는 식료품비를 비롯해 생활비와 교육비(사교육비, 대학 등록금)가 하루가 다르게 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과 자동차 회사, 이동통신사는 광고 융단 폭격과 교묘한 상술(마이너스 통장, 공짜 폰, 장기 할부)로 10대나 20대까지도 빚구덩이에 몰아넣는 형편이다. 30대 중반인 후배 한 명은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좋은 차도 굴리고 때 되면 놀러도 다녀야 하므로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친구 모두 빚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눈치인데 나중에는 어찌 될지 겁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2011년 현재 대한민국의 가계 부채는 총 900조원에 달한다. 파탄은 예고돼 있다. 


   
ⓒ한성원 그림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정치경제학자인 로버트 라이시가 쓴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김영사, 2011년)는 미국 최악의 수출품인 ‘경제 위기’의 원인과 대책을 논한 책이다. 이는 환란 이후 거의 미친 듯이 미국식을 흉내내온 한국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로버트 라이시에 따르면 지금 미국과 전 세계를 휩쓰는 반(反)월가, 반세계화, 반자본주의 시위는 이미 예고돼 있었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늘날 미국 경제는, 혹은 세계 경제는 왜 반복되는 위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할까. 미국 월가를 움직이는 한줌 금융가의 음모 혹은 탐욕이 근본 원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친 소비를 주범으로 지목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화가 원인이라는 이도 적지 않다. 로버트 라이시는 만악의 근본은 끝 간 데 없이 치닫는 부의 양극화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액의 구제금융을 쏟아붓는 것은 근본 대책이 못 된다. 그런 식으로는 소수 파렴치한 금융가의 배만 불려줄 뿐 경기는 다시 장기 침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고용 불안, 소득 정체, 가계 부채에 짓눌려 숨도 못 쉬는 중산층에게 구매력을 돌려주는 것만이 해결 방법이다.

1970년대 말 미국인 총소득에서 최상위 부유층 1%가 가져가는 비율은 9%에 못 미쳤다. 그 이후 점점 불균형이 커져 2007년 현재 상위 1%는 무려 23.5%를 휩쓸어 간다. 로버트 라이시는 대공황이 시작된 1928년 소득이 딱 이만큼 소수에 집중되었던 사실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최상층의 소득 독점이 경기 침체의 직접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는 성장했는데 왜 임금은 오르지 않나

경제가 성장하면 당연히 중산층 대다수는 더 나은 삶을 원한다. 상류층 삶의 질이 비약적으로 뛰는 것을 보며 더 좋은 집과 자동차를 누리는 것이 자기도 가능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면 빚의 늪으로 빠져들어야만 욕구를 채울 수 있다.

지금의 미국 중산층이 임금은 그대로인데 소비를 늘려갈 수 있었던 비결은 세 가지였다. 남녀평등 분위기에 따라 여성 취업 기회가 늘어나자 맞벌이가 가능해졌다. 가계 소득이 부족하자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남성은 주 50시간, 여성은 40시간 이상 일하는 것도 흔해졌다. 2002년과 2007년 사이 미국인은 자기 집을 잡히고 2조3000억 달러를 빌렸다. 미국의 중산층 전체가 돈을 빌려 포커판으로 달려가는 노름꾼처럼 굴었다. 결국 칩은 거덜났고 2008년 대불황이 시작됐다.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로버트 라이시 지음김영사 펴냄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어째서 중산층의 실질 임금은 늘어나지 않았을까. 1970년대 말부터 외국으로 많은 공장이 탈출한 것도 한 원인이었지만 다는 아니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바로 자동화였다. 전산화된 자동 시스템과 컨테이너들은 수많은 직업을 희귀종처럼 만들어버렸고, 2011년 이 희귀종은 거의 멸종했다. 소수의 선택된 이들만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연봉(미국 대기업 CEO와 간부의 연봉은 일반 근로자의 300배이다. 1970년대에는 불과 30배였다)을 받고 나머지의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로버트 라이시는 상상을 초월한 부자들의 씀씀이가 서민에게 위화감을 부르고 국민 화합을 깬다는 식의 말을 하지는 않는다. 부자가 그들이 번 만큼 많이 쓰기가 불가능한 게 문제라고 말한다. 결국 돈은 쌓일 수밖에 없고, 그 돈은 건전한 소비가 아니라 투기처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 때문에 미국 경제계는 흙탕물이 되었다.

기업을 만들어 물건을 팔기보다는 기업을 사냥해 붙여먹는 것이 훨씬 큰 장사가 되었다. 이런 일을 더욱 손쉽게 만들려고 과거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만들었던 룰과 장치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여러 각도에서 진행됐다. 산업의 하인이었던 월가가 주인으로 둔갑했다. 정치인들은 헌금을 통해 합법적으로 뇌물을 받았다. 결국 노인 연금, 의료 보장이 축소되고 노동조합은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기업은 노동자의 목을 자르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됐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라는 간단한 합의가 깨지고 말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다.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미국 전체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월가 출신 각료들의 위협에 굴복해 오바마 대통령은 7000억 달러라는 거액의 구제금융을 쏟아부었다. 경제는 잠깐 안정되는 듯 보였지만 일반 서민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월가의 큰손들은 고작 1년 만에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뒤통수를 맞은 미국 국민은 월가를 점령하자며 들고 일어났다.

부자의 것을 덜어내 중산층에게 일자리와 경제 성장 성과를 돌려주는 변혁을 하지 않는다면 기성 정치권은 몰락하고 미국은 대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고 로버트 라이시는 경고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민자와 중국과 같은 외국 투자자를 적대시하는 정치 반동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계한다. 여야 모두를 순식간에 무력화한 ‘안철수 바람’ 속에는 미국 중산층의 울분과 꼭 닮은 보통 사람의 감성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처럼 재벌이 골목
상권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희망버스’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혼자만 제일 잘나간다면 대한민국도 변혁 혹은 반동을 맞을 수밖에 없으리라. 미국과 한국의 중산층이 뒤로 나자빠지면 재벌은 도대체 어디다 물건을 팔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