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의 흔적

내가 최우선에 두고 살아야 할 관점은

거울닦는 달팽이 2016. 7. 1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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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나 예술가들이 세상을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들이 쏘옥 빠지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인생의 희노애락  생로병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걸려들게 된다. 

그리고, 인생사 희비애락에 나라고 믿는 에고의 나르시즘에 같이 빠져들곤 한다. 

 

은희경의 소설, <태연한 인생>을 읽으며 다시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철학자의 관점, 예술가의 관점, 수행자의 관점을 다 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으나,

그 중에서 수행자의 관점을 가장 최우위에 두며 살아가겠다.

가능하다면, 보디사트바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p.265)
 

 

“요셉은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존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고유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고유함이 없다면 인간은 시간이 되면 꺼지는 기계처럼 패턴에 의해 소비될 뿐이다.
패턴에는 매혹이 없었다.
타인이 지겨운 것은 관계를 맺기 위해 그런 패턴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 은희경, 생각의 일요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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