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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니스 조플린- Piece of My Heart 외

거울닦는 달팽이 2016. 7. 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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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니스 조플린(Janis Lyn Joplin)은 미국의 여성 블루스사이키델릭 록 싱어송라이터이다. 1943년 1월 19일 ~ 1970년 10월 4일

27세에 요절하였기에 27세 클럽 멤버 중 한 명이며, 지미 헨드릭스도어즈의 짐 모리슨과 더불어서 '3J'라고 불린다.[1]

그녀는 1943년 1월 19일에 미국 텍사스주 포트아서 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세스 워드 조플린의 딸로 태어났다. 그렇게 뛰어난 외모를 지니지 않은 탓에 어렸을 때부터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2] 이러한 성장과정은 그녀가 사람의 애정에 굶주리게 만들었으며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다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녀는 친구로부터 블루스 포크음악을 알게 되었고, 가수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그녀는 텍사스를 떠나 당시 사이키델릭 록의 중심이었던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사이키델릭 록 밴드 "Big Brothers & The Holding Company"의 메인 보컬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재니스 조플린의 데뷔 이전까지 비비 킹이나 머디 워터스 등 흑인 블루스의 대가들은 백인은 완벽한 블루스를 할 수 없을 것이다고 믿었으나, 그녀가 데뷔한 후 백인 블루스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가 당대에는 비교할만한 상대를 찾을 수 없는 백인 여성 블루스 싱어였던 것이다.1967년 몬터레이 락 페스티벌의 최고 스타는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한을 토해내듯 무대에서 신들린 듯 노래를 불렀으며 그것은 마치 이제 새로운 여성 락커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는 듯한 포효와도 같았다.[3]

1968년까지 Big Brothers&The Holding Company 활동을 하던 그녀는 1969년 새로운 백 밴드인 Kozmic Blues Band를 구성하여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1969년에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더 후 등과 함께 공연한다. 특히 같은 시간대에 공연을 했던 더 후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드는 이후 그녀의 공연이 엄청났다는 후일담을 남기기도 하였다.

솔로 앨범 작업을 하며 공연을 다니던 그녀는 1970년 10월 4일, 공연에 나타나지 않은 그녀를 찾아온 프로듀서와 매니저에게 헐리우드의 한 호텔방 바닥에 쓰러져 사망한 채 발견된다. 이후 공식 발표에서는 헤로인 과다 투여로 사망한 것으로 나왔으나, 원래 사용하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투여한 것을 보고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녀의 사후 1971년 1월 11일, 재니스 조플린의 유일한 솔로 앨범이자 시대의 명반으로 꼽히는 Pearl이 발매된다. 이 앨범은 발매 후 미국 내에서만 400만장이 넘게 팔리며 4x플래티넘을 기록하였으며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앨범의 녹음 세션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재니스 조플린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Buried Alive in the Blues"라는 곡은 보컬 없이 연주곡으로 실려있다.

from: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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