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의 흔적

종교가 나를 자유롭게 하고 있는가?

거울닦는 달팽이 2009. 7. 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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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째 성당의 미사에 가지 않고 있다.

(날씨도 더운데다, 옷 챙겨 입고 외출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싫었다.)

 

근데...문제는,,,

 특별한 일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에서 자꾸 우울함이 밀려오니까 ,혹시 성당에 안 가서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이다..

아~ 정말 어리석은 유치한 생각임을 알면서도 자꾸 끌려간다.

 

다만,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내 마음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틀린 관념이 그 생각을 부추키는 것일 뿐이며,신은 내가 성당에 가건 말건, 아무~ 상관없이 이 모습 이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라는 것을 아는데....

 

그런데도 내 무의식은 신앙 생활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즉,교무금도 잘 챙겨 내고, 성당 관련된 일에 봉사도 잘 하면~~~

인생이 술술 풀리고, 근심 걱정도 없을 껄...이라고 마음에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 같다. ㅠ.ㅠ

 

단지 우리는 자주 일상의 삶에 매몰되어  본래의 참 마음이 흐려져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각자의 성소에 찾아가 마음을 닦고, 감사하는 마음을 되찾고,

나와 세상 모두를 위해 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이나 교회, 절에 갈 뿐인 것이다.

 

종교 단체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항상 긍정모드로 맞춰 놓을 수 있고,

쓸데없는 잡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수 있으며,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 가짐으로 살아낼수 있다면,

아,니 그냥 감사와 행복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사람이라면

굳이 특정 종교의 신앙 생활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 이토록 오랜 시간 길들여온 불안한 습성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건지,

나 자신도 참 안타깝다.

신은 그렇게 쪼잔하게 나 한사람 신앙 생활에 따라 축복해주고 불행을 막아주는 그런 좁은 틀 안의 존재가 아닐텐데.. 말이다.

 

나의 신앙 여정을 잠시 돌아본다.

 

처음 여기 생활에서 시댁과의 갈등으로 너무 힘들어 할때,

(정말 다 팽게치고 한국으로 돌아갈수도 있다고 작정을 하고, 이 집안을 뒤엎었다고나 할까..ㅠ.ㅠ)

아이들 수영 클래스에서 만난 한국 아주머니가 그녀의 집에 초대를 했었다.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너무나 절실했기에,

자신의 집에 커피 한잔 하러 오라는 그녀의 말이 너무 고마웠고,

그녀의 주소를 들고 프리웨이을 벌벌 떨며 운전해서 그녀의 집을 찾아 갔을때,

그곳엔 나만 초대한 게 아니라, 두 명의 다른 한국 아주머니들이 다과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의 초대는 나를 자신의 교회에 다니게 전도하려는 것이었다.

 

좋다..어쨌든 이곳에서의 영적 여정의 시작이 된 셈이니까...

지난 날의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 그 의미가 있고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그 때의 전도사님이라는 분과의 두번째 만남에서 난 정말 눈물을 쏟으며 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동했고 교회에 몇 달을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종교라도 <사랑>혹은 <자비>의 참 진리를 드러낼 때에 모든 인간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정말 그때의 내 모습은, 영화 <밀양>에서, 처음 전도연이 기독교에 완전 몰입하는 거랑 거의 같은 상태였다.

삶의 벼랑 끝에 있는 사람에게 신앙이 주는 힘이라는 것은 많은 경우, 그 특정한 인물을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만들어 버리는 수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어 자신도 물론 타인을 위해 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종교의 골수 멤버이다시피한 사람들에 의해 교리가 주입되면, 오로지 주 하느님만을 위해 산다는 식의  맹신적인 신앙생활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곧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라 가르치며,(신의 피조물로 종의 개념..)

결국 진리가 너를 자유케하리라는 에수님의 말씀과 전혀 달리, 개개인의 삶을 종교적 노예의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내 눈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밀양이라는 영화의 그녀처럼 적당히 속물적이고, 적당히 잘 난척 하고, 적당히 단순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는 습성이 생겼고,

조금 더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지만, 또한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암튼 그 시기의 나는 남편도  교회에 전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로 여겨졌었는데,

단순한 내게는 먹혀드는 그 교회의 가르침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남편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었다.

 

남편은 기독교인들의 화사한 웃음과(거짓된 웃음이라며) 과장된 친절이 견디기 힘들다면서,

정말 신앙 생활을 하고 싶다면,차라리 성당을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열심하지는 않지만, 시댁 가족들은 천주교 신자였고, 남편만이 그때까지도 영세를 받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렇게 하여, 천주교가 우리 가족의 신앙이 된 것이다.

 

교회와는 달리 성당은 1년의 교리 공부를 마치고 나야 ,영세를 받게 되고 카톨릭 신자가 된다.

누가 성당에 새로 와도 왔느니 반갑다고 호들갑스럽게 맞아 주지도 않아 머쓱할 지경이기도 했다..

남편은 그런 점부터 마음에 든댄다, -.-:

결국, 우리 가족 모두는 지나까지 포함해서 1999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영세를 받았고,

현재까지 일요일이면 성당의 미사에는 어김없이 출석하는 카톨릭 가족이 된 것이다.

 

 

 

 

 

 

그렇게...10여년이 흘렀다.

성당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좋은 점은,그래... 신자들의 간섭이 적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성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 점 때문에 한번 카톨릭인이 되고 나면 잘 이탈하지 않게 되고, 스스로의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극(?)이 강렬하진 않을지라도 신앙적 마인드는 오래간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 금방 잊어버리지만, 자기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 공부는 끝까지 그 기억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교이신 친정 아버지조차 내가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고 전화드리자, 잘 했다고 할 정도로 비종교인들에게도 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카톨릭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종교를 알아가는 것이 독서가 편했다. 아이들이 어린 상태에서 데리고 다니기 힘들었으니..

그러다가 스님이 되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던 송봉모 신부님의 글에서부터

앤소니 멜로 신부님의 책으로 넘어오면서 신앙관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불교의 말씀처럼 멜로 신부님도 세상 사람들의 좁은 틀에 갇혀 버린

가짜 예수를 버려야 한다는 논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미에서 종교학자로 활동하시는 오강남 교수의 책을 통해 여러 종교들을 둘러 보게 되었고,

모든 종교가 결국 일치점을 갖고 있으며, 그 일치점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원하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모든 종교의 꼭지점 위에는 진리의  일치점(하나의 빛)을 지녔고,

단지 인간의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해,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른 형식의 신앙체계를 만들었을 뿐!!

지상에 존재하는 각각의 종교들은  한 빛에서 나온  여러 빛깔의 무지개와 같은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자신읮종교가 아닌 타종교가 틀렸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으며,

단지, 다른 색깔로 우리 눈에 보일 뿐이며, 

모든 종교는 진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현재의 내가 보는 종교에 관한 관점은,

세상의 모든 종교는 특정 지역, 특정 역사적 사건들과 연계되어  제각기 문제점을 안은 채 이어져 왔으며,

그것은 진리(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무지와 인간 의식의 왜곡에 인한 것임도 안다.

 

무엇보다 카톨릭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전쟁과 인류의 비참함을 고착화해왔던  대표적인 종교였다는 것을 역사를 다시 돌아보며 깨닫게 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건너와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그들은 종교의 참 정신인 사랑과는 전혀 거리가 멀게도 이 땅의 원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을  신무기를 사용하여 싹쓸이 해 버리다시피해 버렸고, 필요한 농업 노동력을 충당키 위해서는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끌고와  짐승처럼 부리기위해 노예제도를 만들었었다.

 

그런 비참함 속에서도 흑인들이 저항이 드물었던  가장 큰 이유가, 중세의 인간들에게 강요했던 복종적 인간을 만들어 버리는 크리스트교의 교리가, 흑인 노예들의 머리에 세뇌되어왔다는 것과 상관이 크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프로테스탄트교는 기득권층에게는 이 세속적 삶에 있어서 더 많이 더 더 누리며 살게 해 달라는 소망을 들어주는 마술 램프의 지니 역할을 했다. 기득세력의 번영을 위해  이용(?)해야만 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대중들을 저항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줄 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빈 주머니 마지막 동전까지 털어내는 역할까지도 충실히 하고 있었다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특히,

지구상의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천연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식민지를 건설하던 때에는, 처음부터 총칼을 들고 들어가 그 땅을 삼킨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먼저 파견하여 정신적으로 서서히 식민지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작업을 먼저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알게 모르게 가난한 국가의 대중들은 서구의 종교에 흡수되고, 서구의 것이 우월하다는 무의식을 갖게 된다. 선교사들은 정말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풀고 선교를 했을지언정,  그들 강대국 정치가들의 시각에선 식민지 개척의 워밍업 작업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렇게 파견된 선교사들이 그 지역의 민족주의 세력들에 의해서 처형을 당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에는 "이때다..옳다구나.." 하면서 군대와 군인들을 보내어 침략 전쟁을 시작 했다는 점....그리하여, 식민지를 건설 하게 되면, 자신들이 원하는 자원을 맘껏 수탈하며, 그곳의 노동력을 맘껏 값싸게 이용하는 식이었다는....

 

어쨌거나 종교인들은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순수한 종교적 차원의 선교였다고 보겠지만, 결국 많은 수의 신앙인들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이용되고 희생되어 왔다는 사실과, 종교 조직의 수장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정치과 결탁하여 그 위치와 권력를 계속 공고히 지켜 왔다는 사실들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렇지 않은가?

서구의 물질주의 관념을 배우고 추종해 왔던 세력에 의한 근대사였으니, 그것을 반성하던 세력이 정권을 잡은 10년을 제외하고(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 또다시 현재는 그 서구병과 물질병에 영혼을 잃어버린 인간이 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은 못했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에 다른 카톨릭 신자들만큼의 큰 슬픔을 못 느낀 이유가 사실 나의 이러한 역사적 시선과 관련이 조금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강대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문화적 식민지가 될 나라들에, 자신들의 종교를 든든하게 심어 놓는 것은 참으로 기본적인 방편이었으니까...

뚜렷한 역사의식과 냉정한 판단력을 지닌 종교 지도자보다는, 온순하며 체제 순응적이며 사회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을 선량한 종교 지도자를 원했겠지..

물론 신앙적 차원에서는 그분의 겸손하고 소탈하시며 순수하셨던 영혼을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한다.

(사실, 미국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는 유엔에서의 반기문 총장의 자리도 이런 맥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카톨릭뿐 아니라, 지상의 모든 종교들이 어느 지역에서건, 그런 식으로 정치와 연결되어 권력을 누리고, 

명맥을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종교 조직에 회의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처가, 깨달아 알게 된 참 진리는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잘 알기에,

각 종교마다 초기의 순수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시각에 무척 공감을 하게 된다.

 

불교도 초기 불교의 연구가 중요하고(근본 불교), 

크리스트교도 로마의 국교가 되어버리면서 제도 종교에 밀려버리기 전의 초기의 영지주의적 관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도마복음의 발견과 해석)

 

이런 것들을 하나 하나 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꼭 교회나 성당에 출석 잘 하는 것이 신앙 생활에 그리 중요한 것인가...하는 회의가 든 것이다.

 

 

 

 

 

물론 인간은 영적 존재이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야 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는 진리이긴 하다.

 

그니까..

결론은!!!! 

내가, 이토록 여러 관점에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아도....

2주동안 성당의 미사를 가지 않은 것이랑, 내가 우울한 마음이 든 것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저 방학이라 늘어진 생활에서,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사회적 시간을 갖는 것이,

마음의 재충전 상태를 가져다 주어 우울한 감정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 뿐이라 생각하면 되는 데 말이다.

 

하지만 또 상관이 있다고 머리속에서 부추킨다.

그것은 오랜 시간 신앙 생활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 온 <충실한 종교 행위 = 축복, 행복>

이라는 낡은 마음의 습관일 뿐이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이런 여러가지 내 머리 속의 쓰잘데기 없는 죄의식과  나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잠재의식들을 비워내고 싶다.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할 것이 아닌가?

종교적 행위의 유무에 맘이 쓰여,  이렇게 속박이 되었다는 건, 내가 뭔가 잘 못 가고 있다는 것이잖아,,,

 

사실 어느 종교에서건 참된 종교는 <비움>을 강조한다.

크리스트교의 회개, 불교의 참회가 가장 우선시 되는 점이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내 하고 있는 카톨릭 기도문으로는 예수 수난 15 기도가 대표적인 회개 기도이다.

1년 동안 매일 일정시간 할애해서 꾸준히 하는 기도인데,19세기때의 수녀가 예수님의 환시로 받은 기도라 하는데....


암튼,사실이건 아니건,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믿으면 믿는대로 되게, 두뇌는 활동을 하는 것 같다.

단순한 면이 있는 나...그 기도를 1년 꼬박 했었다..

그리고 믿고 기도해 본 것처럼, 내 살아오면서 저지른 과오들이 하나씩 되살아나는 체험을 했고,

그것들에 대해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하고 놓아버리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정신과적 치료와도 같은 맥락인 듯하다.

개인의 무의식 근저까지 파고 들어가, 잘못 해석된 채 기억되어진 부정적인 생각들을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일깨워 주고,

그것을 의식세계로 배출해서 풀어버림으로, 묶여져 있던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종교라 이름 붙이지 않더라도,

육신의 나약함과 물질 세계에 묶여 사는 삶이기에,

영혼을 닦는 일, 그리고 나와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일,

나와 세상을 하나로 생각하며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고, 예수님, 부처님, 창조주가 원하는 인간다운 삶이 아닌가 싶다.

 

 

한편으론, 여전히 종교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통들과 형식을 중시하며,  정치와 종교가 일치되어 있는 국가(이슬람국가)들의 심각한 폐해를 생각해보면, 종교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에 심각하게 생각해보고나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예배나 미사등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수준의 신앙생활이라면,

그 종교를 바르게 알고 삶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신은 그런 분 쪼잔한 존재가 아니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되잖아~~~~

 

 

 글을 마치면서도 하고픈 말이 남는다.. 대충 정리해보자면,

 

*고단한 이민생활에서도 토요일, 일요일은 내내 교회의 활동과 봉사에 물질과 시간을 다 바치시는 분들이,

 참된 신앙 생활을 강박이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부터도 아직 남아있는 강박적인 신앙적 습관과 태도를 다 비워버렸으면 좋겠다.

 

*여전히 자신의 종교가 세상을 구원할 거라면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어느 땅이든 자신의 나라와 풍토에 맞는 신앙은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있어 왔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 나름의 종교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게 놔버려 두면 좋겠다.

모든 종교는 각자의 믄화와 환경에 따라  고유의 방식대로 진리를 품고 있으니까....

 

단지,휴머니즘적인 차원에서 지구촌의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도왔으면 좋겠다.

즉,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우월하다며 그 땅에 자신의 종교를 이식하려는 의도가 우선시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단체나 조직을 만드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일.

그러나, 종교 조직의 역사와 문제점등도  명확히 알고 신앙 생활을 하면 좋겠고,

무지로 인해 왜곡하거나 편협된 신앙생활을 하거나  매몰되지 않으면 좋겠다..

예수님 말씀처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했다면, 

신앙 자체가 인간에게  걸림되어 구속받고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면 뭔가 잘 못된 것이 아닐까???

 

...

 

아..

성당에 2주 빠진 거랑, 나의 우울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컴에 앉았는데,

또 이토록 긴 글이 되었다. 흐흑..ㅠ.ㅠ

 

하지만 과거의 나처럼 종교의 이러한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분들도 있을 거 같아서,

미주알 고주알 머리 쥐어 뜯으며 생각나는대로 써본다.

예전의 나같으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왠 쓰잘데기 없는 에너지 낭비??? 했을런지도 모를 일을...

 

암튼 학문적 차원에서 깊이 있게 종교의 문제점을 제시하는 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체험을 통해 무지했던 종교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열린 객관적 종교관을 가지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수도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어설픈 잡글을 마치련다.

 

수고했다..달팽아~ 이제 샤워하고 좀 놀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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