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일기장

흐르는 강물처럼

거울닦는 달팽이 2009. 10. 13.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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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밤 고요히 흐르는

강물 같아라

밤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아

하늘의 모든 별을 제 물결에 담고

구름이 하늘을 가리면

구름 또한 물 같고 강 같아

흔쾌히 그들을 비추리

깊고 깊은 침묵 속에서.

 

 

마누엘 반데이라 Manuel Bandeira

 

 

 

 

 

 

아직도 섬머타임 적용 중이어서

아침에 6시에 일어나는 것이 정말 힘들다..

이 Daylight Saving Time은 11월 1일에나 끝이난다.ㅠ.ㅠ

 

유진이를 7시까지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지나랑 남편 나가는 것 보고,

침대에 기어 들어간다.

(그러니까 정작은 6시가 아닌가 말이다..흐흑..)

 

따끈하게 전기요의 온도를 적절히 맞추고

머리맡의 램프를 켠다.

 

오늘은 흐린 날씨..

해도 구름속에 가리워졌고,

늦잠 자기 딱 좋은 날...*^^*

아,

좋아....

 

침대 속에 기어들면서 집은 책은

파울로 코엘로의 <흐르는 강물처럼>

 

이 책은 소설이 아니었다는 것도 몰랐다

어제 저녁 도서관에 문 닫을 무렵에 들렀다가

파울로의 신작이라고 알고 있는 이 책이

서가의 제일 윗편에 꽂혀있는 걸 발견하고

황송해하면서 무조건 그냥 들고 왔었기에..

 

담백하고 쉬우나

맑으면서 깊은 그의 문체...

 

 파울로 코엘료의 글이야말로

현학을 뛰어넘은

깨달음의 경지에서 나오는 글이라 생각한다.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하다.

다만 그는 재능있는 작가..

나는 독자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그러다, 깜박 잠이 들었고,

일어나니 11시다.ㅋㅋ

 

여전히

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고

창 밖은 회색빛이다.

 

아..가을의 한가운데구나..

 

내 기억으로 이 제목과 

비슷한 이문세의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다.

 

컴에 앉아서 노래 파일을 찾아 본다.

찾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같은 제목이었네..후후..

 

 

 

 


 

 

내 아들 유진이의 눈에는

도전이나 성취 의식이 없어뵈는

엄마의 나날들이

 참 재미없어 보이나보다..

 

현재의 내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다는

나를 참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본다.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금 내 삶의 방식을 이해 못하더라도

 난 눈 깜짝 안 할 수 있을 거 같다.

왜냐면 내가 좋으니까...ㅋㅋ

 

그런데,

아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늘 아침까지도 마음이 쓰인다.ㅠ.ㅠ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을 향해  치열한 몸짓으로 날아가려는

사춘기의 남자아이에게

 

세상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세상에 나가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훌륭한 업적을 남겨야만 하는 것이..

훌륭한 삶의 전부가 아닐수가 있다는 것을 말해 보아도

별로 공감할 수가 없다는 것을...-.-;

 

도리어

능력 부족한 인간이

자신의 꿈에 대한 포기를

합리화 내지는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손 자라지 않는 높은 곳에 달려있는

 포도를 쳐다보며

여우가 하는 말,

 

"저 포도는 너무 시어.."

라는 거지..

 

능력 부족은 맞는 말일수는 있지만,

포기에 관한 변명은 절대 아니다.

 

정말로

나는 나 방식의 행복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웃의, 타인의,세상의 시선이 무엇이 중요한가..

정작 마음 쓸 것은

<내 안의 나>라는 것을..

 

그러니,

아들의 시선이라도

마음 쓰여 하지 말자.

 

 

 

 

나는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어느 때보다 훨씬 성장하고 있으며

삶과 사람을

깊고 넓게

사랑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품 속을 거부할 수 있는

아이의 반항적 시선이야말로,

마음도, 몸처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련다.

 

틴에이저인 남자 아이가

엄마의 생각과 충고에 동조하고 따르고 있다면,

결국, 엄마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 것이 아닌가..

 

나와는 또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의 힘으로

알에서 깨어나

험한 세상을 향해

날아가려는

아들의 등 뒤를 바라보며

 

오늘도

늘 그렇듯

나는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

 

산문집인 이 글에서

어느 기자가 코엘료에게 묻는다.

죽으면 자신의 장례식은 어떤 식이길 워하냐

묘비를 만들게 된다면 어떤 글귀를 원하냐는 구절..

그의 대답이었다.

 

"화장할테니 묘비명이 새겨진 묘석 따위는 없겠죠.

타고 남은 재가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갈 텐데요.

하지만 굳이 묘비에 새길 한 문장을 택하라면,  이 말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살아서 죽었다.'

말장난이나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일하고 먹고, 열심히 일상을 꾸려나가면서도

살아 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요.

그들은 하루하루 펼쳐지는 삶의 기적대해 되새겨보기 위해 잠시 멍추지도 않고,

다가오는 시간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살고 있어요.

...

 

우리는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그러니, 항상 그것을 의식하고 일분 일분에 감사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죽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결단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으니까.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산 송장'으로 머물러 있지 않도록 북돋우고,

우리가 늘 꿈꿔왔던 일들을 감행케 한다.

우리가 원하든 말든, 죽음의 사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중 죽음에 감사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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