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의 흔적

세상을 알고 싶으면…침묵을 배우라

거울닦는 달팽이 2010. 5. 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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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도를 지켜 큰 자비를 행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일부러 찾아와 비난했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고 대꾸하지 않았더니 비난하기를 그쳤다.” 그에게 묻기를 “만일 그대가 선물을 가지고 갔으나 그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시 그대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저에게 돌아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욕하였지만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욕은 그대의 것이다. 그것은 메아리가 따르고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다. 그대는 스스로 범한 죄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삼가하여 악한 일을 멈추도록 하라.”
 
 
‘진지하게 생각’ 하는 훈련되면,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아 
  
 
성인들의 남다른 풍모라는 것은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에 있다.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의 추위가 매섭다 해도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참아낼 수 있다. 삶의 굴곡에 처해서도 언젠가는 반전될 기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인생의 고비 고비를 잘 넘어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나에게 욕을 하고 위협을 가할지라도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우주가 존재하는 힘은 주기적인 질서에 있다. 이 주기라고 하는 리듬을 알면 세상에 처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부처님은 선물(禮)을 비유로 들었다. 생각해보라. 가치는 상대의 판단영역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보다 못하면 조롱하고, 잘해도 비난하고 헐뜯는다. 이것은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성인들이 한결같이 겪었던 바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은 자신들의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상갓집의 개’처럼 보인다는 조롱을 듣기도 하였다. 노자나 장자는 스스로를 “세상에 별 쓰임이 없을 것”이라며 끼어들지 않았다. 이 영혼의 스승들이 가졌던 또 하나의 진리의 무기는 바로 침묵이었다. 그분들은 침묵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여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의 질문에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심심풀이로 툭 던져볼 뿐이다. 그들은 세상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세상에 진짜보다 가짜가 많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질문에 현혹되면 곤란하다.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우리는 장황해져 버린다.
 
세상을 잘 알고 싶으면 기다려보라. <여씨춘추> ‘임수’편에는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때,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이레 동안을 굶다시피 하던 때의 얘기가 나온다. 제자인 안회가 가까스로 쌀을 조금 얻어 밥을 지었던가 보다. 마침 공자가 부엌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안회가 주걱으로 밥을 떠먹는 것을 보고 말았다. 공자가 짐짓 모른 체 하며 “간밤에 선친을 꿈에 뵈었으니 제사를 올리고 싶다”하며 슬쩍 떠보았다. 그런데 안회가 정색하며 말했다. “불가합니다. 밥이 익었나 하고 솥을 열었을 때 큰 재가 떨어져서 주걱으로 건져내다 거기에 붙은 밥알을 입을 넣고 말았습니다. 제사에 쓰기는 깨끗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깊이 탄식하며 “내가 믿는 것은 눈이지만 눈도 완전하지 않구나. 내가 의지하는 것은 마음이지만 이 또한 부족하구나. 잘 기억해두라. 사람을 이해하기란 본래 어렵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
 
보경스님 / 서울 법련사 주지
 
 
[불교신문 2611호/ 4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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