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술

법륜스님:화를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법

거울닦는 달팽이 2011. 5. 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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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 스님: 붓다 나를 흔들다 3

 

화를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법


부처님께서 왕사성 죽림성에 계실 때 이야기입니다. 한 브라만이 죽림정사를 찾아와서는 부처님께 막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어요. 사연을 알아보니 같은 브라만 출신의 젊은이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아주 착실한 기독교 신자나 목사가 어느 날 불교 신자가 되거나 출가해서 스님이 된 것과 같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찾아와 왜 우리 신도를 빼았아갔느냐고 항의하고 욕을 퍼부은 겁니다. 그 브라만의 이름이 경전에 아수린다타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한문으로 고치면 아수라 阿修羅의 왕입니다. 화를 내는 모습이 아수라와 같다고 해서 아수라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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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화를 낼 때의 모습은 마치 이 우주의 깡패인 아수라와 같다고 하죠. 아수라는 힘이 아주 셉니다. 인간에 비해 수백 수천 수만 배나 되지요. 그래서 아수라는 신에 속합니다. 능력 면에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수라는 자기 생각이 옳다는 신념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늘 못마땅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보자마자 또 말을 듣자마자 화부터 내며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난장판이 되지요. 난장판을 일러 아수라장이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예요. 아수라들의 싸움터 같다. 아수라들의 전쟁터다, 그런 말이죠. 그걸 줄여서 수라장이라고도 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침묵을 지키셨어요. 그 사람이 막 욕설을 하는데도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러자 그 브라만이 “사문이여, 그대는 졌도다. 내가 이긴 것이다”라고 큰 소리를 쳤지요. 자기가 그렇게 욕설을 퍼붓는데도 대꾸 한마디 못하니까 자기가 이긴 거라는 거예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브라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둔한 자는 욕과 비방을 늘어놓고서 자기가 이겼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올바른 인내를 아는 이의 것이다. 성내는 자에게 되받아 성내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성내는 자에게 되받아 성내지 않는 자는 두 가지 승리를 얻는다. 다른 사람의 노여움을 알고 정념으로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자는 스스로에게 이김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이기는 것이다. 상대가 화를 낸다고 덩달아 화를 내는 사람은 승리자가 아니다 패배자다.

상대에게 끌려드니 상대에게 진 것이고, 자기 분을 못 이기니 자기 자신에게도 진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패배에 속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화에 대해 네 종류의 반응을 보입니다.

첫 번째는, 상대는 가만히 있는데 자기가 화를 벌컥 내고 시비를 일삼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분별심을 일으켜서 상대를 보고 화를 내는 겁니다. 상대가 하는 말이나 일이 못마땅해서 화를 내는 거죠. 이것이 제일 어리석은 자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가 자기한테 화를 내면 자기도 따라서 화를 내는 사람입니다. 왜 화를 내냐고 물으면, 네가 먼저 화를 내지 않았느냐, 네가 나한테 화를 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으란 말이냐 하고 따집니다.

세 번째는, 상대가 화를 내는 바람에 덩달아 화가 나지만 참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지기한테 화를낼 때 되받아 화를 내면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고 자기가 손해니까 화가 나지만 참는 거예요. 현명한 사람이죠. 그러나 이렇게 참는 사람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입니다. “ 보자보자 하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하면서 결국은 터져요. 그렇게 터지면 그 사람의 화는 마치 불과도 같습니다.
마치 증기를 누르고 있던 무거운 솥뚜껑이 한 순간 폭발해서 튕겨나가는 것과 같지요. 그래서 착한 사람이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왜 무서울까요? 착한 사람은 잘 참거든요. 참다가 참다가 터지면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가끔 아내가 남편을 칼로 찔렀다는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 여자 참 독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중에 알고 보면 하나같이 착한 분이에요. 옛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때의 여자는 육신의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약자라는 뜻이에요. 약자는 힘 있는 자에게 억눌리기 때문에 참게 됩니다. 그러나 억눌림이 지나치면 폭발하게 되지요. 사회적으로 말하면 폭동을 일으키는 겁니다. 크게 보면 그것도 다 어리석음이지만, 그건 개인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참을 수 밖에 없고, 이 참음이 지나칠 때 폭발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수행자는 참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참지 말고 화를 벌컥 내고 싸워야 할까요? 아니에요. 수행자는 참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참는 것을 인욕이라 하고, 참을 것이 없는 것을 인욕바라밀 이라고 합니다.

참을 것이 없기 때문에 오래 참는 거예요. 참을 것이 없으니 괴롭지가 않은 겁니다. 참을 것이 있는 사람은 참는데 한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참을 것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 하는 분별이 끊어져야 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은 내 관점, 내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 분별이 일고 그런 생각이 일어났을 뿐이지 객관적 사실이 아니에요.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면 화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화가 일어나지 않으니 참을 게 없는 거에요.

내가 옳다는 입장을 버리고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상대가 화를 내더라도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저 사람이 살아온 배경이나 처지나 조건에서 보면 그럴 만하겠다 싶어지지요. 그렇다고 그 사람 행위가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상대방이 이해되고 인정되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잘 참는 것 같겠죠. 저런 수모를 겪고도 어떻게 참을까, 인욕보살이다 하겠지요. 그러나 정작 본인은 참는 게 아니죠.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더 나아가 불쌍히 여기고 연민하는 것이죠. 그러니 부처님께서 자신에게 화내는 상대방을 보고도 빙긋이 웃을 수 있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뭔가 항의를 할 때 엄마는 ‘우리애가 말을 잘못했는데 이제 말을 제법 한다’하고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엄마 왜 늦게 왔어?” 하는 소리를 ‘쟤가 배가 고팠구나’라고 이해하고 오히려 등을 두드리면서 “배고팠지? 빨리 밥 차려줄게” 이렇게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이해하는 것만큼 아이는 엄마가’ 이런 일로 늦었구나’하고 이해해 주지 않죠.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말에 어리다는 말이 어리석다는 말과 통하는 겁니다.

상대를 이해하게 될 때 이는 그대로 볼 수가 이고 빙긋이 웃을 수가 있어요. 오히려 위로의 말을 할 수도 있겠지요.그래서 자기 종교에 속한 사람이 부처님 제자가 된 것에 화가 나 씩씩거리는 사람을 보면서도 부처님께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신 겁니다.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상대에게 끌려들지 않는다. 자신을 잘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도 이기고 자기에게도 이기는 자, 두 가지 승리를 행하는 자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와 같이 네 번째 사람은 상대가 화를 내지만 자기는 빙긋이 웃는 사람, 침묵하는 사람입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 화가 일어날 때 화가 일어나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그냥 놓아버리는 사람, 그래서 참지 않는 사람입니다.

수행자는 목표가 이와 같은 인욕보살, 다시 말해 인욕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밀’이란 말은 ‘바라밀다’의 준말로,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다’ ‘저 언덕에 이르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인욕바라밀이란 인욕을 넘어서 모든 괴로움의 바다를 건넜다는 뜻이지요.

참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괴로움의 바다를 건넌 게 아니죠. 그래서 인욕과 인욕바라말은 다른 겁니다. 이 세상에서 인욕, 즉 인내를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수행자는 인욕바라밀을 행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원수를 용서하는 것을 중요시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용서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미워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할 것도 없는 것, 이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한번은 어떤 브라만이 부처님께 막 욕을 했어요. 욕을 하는데도 부처님이 아무 말 없이 길을 가니까 이 브라만이 흙덩이를 집어 부처님께 던졌죠. 그런데 마침 바람이 거꾸로 불어서 자기가 흙먼지를 다 뒤집어썼어요.
바람을 향해 던진 흙이 오히려 자신을 더럽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는 것은 남을 해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해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를 잘한 행위라고, 그런 사람을 승리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승자의 길이 아니라 패자의 길입니다.

 

 상대가 화를 내더라도 침묵하거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두 가지 승리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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