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일기장

어머니 생신상을 준비해 드리고..

거울닦는 달팽이 2009. 8. 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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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스 얹기 전의 참치 다타끼

 

 

 

오늘 어머니 생신상을 차렸다.

시어머니는 이북 출신이시기 때문인지, 상차림이 참 간단하다.

손님을 초대해도 만두국에 김치만 내 놓으셔도 된다고 생각하실 정도로 실용주의 스타일이시다.

어머니의 18번은 냉면과 녹두 빈대떡, 그리고 아주 큰 사이즈의 평안도 만두이다. *^^*

 

나?

대구댁인 나는 손님 초대를 하면, 상다리가 부서지도록 온갖 음식을 차리시던 엄마를 보고 컸다.

시어머니께서 처음 울 집에 오셔서 울 엄마가 차린 상차림을 보시고 놀라셨다는 후문이...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모범 주부상을 주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울 엄마..ㅋㅋ

 

화씨 92도가 넘는 날씨에 시어른 초대한 저녁식사을 준비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 처음으로 시도하는 튜나 다타끼와 잣가루 소스  새우 냉채를 잘 만들어야지..하는 의욕에 맘은 더욱  불탔다.^^;

 

미역국은 어젯밤에 한냄비 끓여 놓았었고, 닭불고기도 꼬치를 만들어서 폼나게 준비했다.

더운 날 오븐에 구우면 집안 온도가 더 올라 갈거고, 후라이팬에 굽느라 진짜 애썼다. 크~^^;

시어르신 좋아하는 도토리 묵도 푸짐하게 야채를 담은 후에 준비하고, 도미 튀김은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 포기..^^;

 

 한식이니까 레녹스 버터플라이 그릇들을 꺼냈다.

음식을 차리기 전에 일단 그릇으로 테이블 셑팅해 놓고...

여름이니까 중간에 초록색 포인트가 있는 포트 메리온 유리컵을 꺼냈다.

연두색 테이블 매트위에 그릇들과 유리컵을 예쁘게 셑팅!!  여기다 조금 더 추가하면 된다..

흠~ 이뿌다...


 

 

테이블 세팅하던 중..

 

 

 

역시나, 어머니께서 와서 보시고는 날도 더운데 뭘 이리 많이 차렸냐? 하신다..^^

소스가 세개나 되는 바람에 아버님이 헷갈려 하시고,

포개어 셋팅해 놓은 그릇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설겆이꺼리 많게 무슨 그릇을 이리 많이 쓰냐? 하신다..

"아..어머니, 제 요리를 예술로 한번 승화시켜 볼려구요~" 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작년은 내 인생에서 요리에 관심이 불타 올랐던 한 해 였다... ㅎㅎ

김치도 제대로 담을 수 있게 되었고,(오늘도 새 메뉴보다  김치 맛있다는 칭찬을 두번이나 하셨다..^^) 베이킹도 할 수 있게 되었고, 흔하게 먹는 음식들도 레서피를 만들어 놓아, 양념 비율 때문에 음식을 쪼물딱거리던 습성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여파로 그릇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레녹스 버터 플라이를 선두로, 포트 메리온, 빌레로이 보흐, 웨지 우드까지 명품 그릇이라 칭하는 것들을 세일 시기를 높치지 않고,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올해 이렇게 경제 위기를 겪을 걸 알았다면 그 짓을 못했을 거 같은데...

여건이 된다면 사람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저질러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ㅎㅎㅎ

 

사실 예전에는 시어른 생신이면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우리집에 와서는 후식만 하면 되었었다.

올해는 한푼이라도 아끼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그리고 정말 정말로 ..

힘든 세상 살아오신 부모님을 위해서 정성들인 식사 준비를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새우 냉채

 

 

 

어제는 엄마랑도 통화를 했다.

언제나 남을 위주로 배려하며 사셨던 우리 엄마, 오늘 시어머니 생신이어서 우리집에서 저녁 차린다고 말하니, 잘했다고 칭찬하며 항상 잘해드리라고 신신당부하신다. 으~

아마 우리 엄마는 내가 시댁과 1년동안 연락 끊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고 하면 기절하실거다..^^;

 

그렇다..

이북 출신이신 시어머니의 성격은 결혼 전 남편 친구들에게도 악명(?) 높을 정도였고, 이 집안의 큰 사위도

장인 장모가 불편해서 멀리 동부 뉴저지로 이사를 간 정도였으니..며느리인 나는 오죽 했으리...ㅠ.ㅠ

소심이인 내가 그 어머니와 목청 높여 싸우기까지 했으니...ㅋㅋㅋ (비록 전화상이었지만..)

 

그런 갈등을 겪고 나서는 삶이 참 많이 편해졌다,

마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혁명이 필요하듯, 이 집안의 방실방실 잘 웃는 착한 큰 며느리가 미친것도 아닌데, 몇차례 뒤집었으니..

오바 잘하시는 시어머니는 너때문에 시아버지께서 우셨다는 말로 내게 상처를 주시기도 했다.

 

암튼!! 국민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안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시어르신들과 나와는 이제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고나 할까..*^^*

나이드시면서 어머니께서도 점점 너그러워지시고, 또 나도 이젠 산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임을 뼈저리도록

잘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것 같다.

6.25때는 남한으로 피난오시고, 중년이 지나 미국으로 이민 오시면서는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

오랜 시간 힘든 인생을 살아오신 우리네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쨘~ 해진다..ㅠ.ㅠ

 

어제 전화 통화는 친정 엄마께 보내드린 위장약을 받으셨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는데,

그 소포를 보내면서 엄마께 편지도 써서 함께 보냈었다.

쫌 길게 썼다. 장장 6장이었다는...^^;

 

그동안 내내 엄마께 편지를 쓰고 싶었었다..매일 미루기만 했지만..

마흔 지나면서 엄마가 내 나이일적에 어떻게 느끼고 사셨는지 생각해 보게 되고, 엄마의 심정이 공감이 되는 것도 너무 많았고, 또 내가 인생에서 배운 것을 엄마에게 넌즈시 알려 드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우셨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울컥~ ㅠ.ㅠ (울면 안 돼!!)

수화기를 든 채로 울지 않으려고 애써 다른 화제로 얘기를 돌렸다.ㅠ.ㅠ ㅎㅎ

 

이래저래 나이가 든다는 것이 참 좋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도 다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걸  생각할 줄 알게 되어, 미운 사람이 점점 없어져 가는 것이 좋다..

 

특히 나이드신 분들을 보노라면, 오랜 세월을 살아내신 것만으로도 장하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ㅠ.ㅠ

더군다나 우리 부모님 세대는 나보다 더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다 겪어내신 분들이다..

그 격변의 시간들을  살아내시느라고 나름대로의 온갖 생존방식을 갖게 된 거겠지...

지금처럼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삶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도 없었을 거고,

그러니 그분들의 성격의 이상한(?) 부분은 우리 세대가 도리어 이해를 해드려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탁에서 계속 "원이가 했어!!" 를 외쳐대는 남편을 보고,

 "으이그~ 이 팔불출~" 하시던 시어머니의 핀잔도 이젠 정겹디 정겹게 들렸고... ^^

남은 음식들 정성스레 싸서 넣어 드린다. (난 사실 남은 음식 싸가는 것 참 싫어하는데...)

어르신들은 음식 욕심 있으신 거 이젠 잘 이해한다...

살아오신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도...

 

커피 한잔 내려서 마시고, 어른들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에 대해 일기를 쓸까 말까 망설이다 썼는데,

역시 길어지네..후후...^^

 

암튼, 내 마음에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이해와 연민이 조금씩 더 자라는 것이 참 감사하다.

 

 

*처음으로 시도해 본 두가지 음식과 테이블 셑팅하던 중에 찍은 사진을 올려 본다.

아..드뎌 나도 요리를 블로그에 올리다니...

(앗, 저 김통은 왜 안 내리고 찍은거지...^^; )

정말 요리 블로거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무너무 번거러운 거 같은데...

 

 

 

 

 나를 레녹스 버터플라이 세계에 빠져들게 한 주범, 버터플라이 티셋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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