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2008년의 결산 - 박노자 (펌)

거울닦는 달팽이 2009. 1. 29.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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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이 끝나가는 시점에야 발견한 글이다.

나 개인의 2008년도의 결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성하면서...

(1월이 가기 전에 정리해봐야겠다..끙~ ^^;)

 

2008년을 지나오면서 우리가 경험했던 일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세계 공황이 시작된 2008년,

위기의 시기임에는 틀림없기에 또한 변혁의 씨앗을 동시에 품고 있는 2009년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지켜보는데 좋은 좌표가 될 글이라 여겨져, 늦었지만 퍼 놓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직은 세계 제 1의 패권국가인 미국에서의 오바마의 집권으로-그동안의 대부분의 전쟁에 미국이 개입되었던 것을 생각하면-전쟁은 많이 줄어 들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 분의 예상은 여전히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구촌 전체 시민의 각성이 요구되는 한 해 임에는 틀림없을 거 같다..)

 

 


 

 

이제 몇 시간이면 새로운 한 해가 밝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보통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제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맹폭 기사들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좋은 말"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2009년에 대한 이렇다 할만한 통상적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 자체는 보다 높은 차원의 희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년이 전쟁의 해일 것이고, 경제적 파산이 지속될 해일 것이고, 반쪽 케인스주의적 조치들이 세계공황을 막는데에 실패할 한 해가 될 것은 이미 뻔합니다. 그러나 위기는 바로 기회입니다. 여태까지의 3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적 "금융권 위주"의, "규제가 풀린" 경제가 파산되는 와중에서 시장과 시장주의에 대한 민중들의 새로운 자각이 공고화될 것이고, 새로운 - 우리가 아직 상상하기 어려운 - 수준의 저항의 씨가 자랄 것입니다. 우리가 2008년 말에 본 희랍의 사태는, 2009년에 우리가 볼 새로운 세상의 아주 대략적인 윤곽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적어도 준주변부의 경우에 한해서 말씀입니다.
 
2008년은 세계공황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고, 지속적인 세계적 살육과 민족주의적 발광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아프간부터 그루지아, 팔레스타인까지의 "광의의 중동"에서 열강의 정복전쟁과 각종 대리전에서 수만 명이 고통스럽게 죽었고, 중국이라는 세계의 새로운 산업적 심장은 올림픽의 허영으로 한 때에 민족주의적 광란에 휩싸였습니다. 거기에 비할 바가 안되지만, 우리가 보는 앞에서 법무부가 "전체 재한 외국인 중의 10%이상 불법 체류하면 안된다"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우리 노동하는 "외국" 형제들을 무조건 붙잡아 내보내 그들의 인생에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이 이주 노동자가 정착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다민족적 사회가 되는 걸 막겠다는 발상인 듯합니다. 하여간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국가와 자본의 합법적인 폭력은 각종의 "타자"들을 계속 한 해동안 짓밟고 죽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집권 중인 사민주의자들이 직접 협조하거나 공염불 수준에서 아무런 효율성이 없는 "반대"를 외쳤을 뿐입니다. 한국 민중은, 과거에 비해서 "우리 속의 타자" 문제에 눈을 훨씬 잘 뜬 상태지만 권위주의화로 다시 나간 국가로부터 그들을 아직도 잘 보호해주지 못하고, 그들과 손 잡아 싸우는 경험이 부족합니다. "불법 체류자"와 학생들이 같이 데모하는 희랍은 우리의 미래일지 모르지만, 아직은 우리 현재는 아닙니다.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린 한 해, 그러나 소득 하나 있었습니다. 적어도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 신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독재보다야 낫다는 걸 다들 알고 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2008년만큼 뼈저리게 절감한 해는 없었습니다:
 
1.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정확히 "국민" 집단에만 적용됩니다. 한국의 "불법 체류자"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미군의 "오폭" (?)으로 2008년에 적어도 약 400명이 죽은 아프간 사람에게는 "주인들"의 찬란한 민주주의는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타자", 특히 경제적인 위치와 세계질서에서의 위치가 낮은 타자에 대한 "국민"집단의 폭력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효율적으로 합리화합니다. 이스라엘 국민 80% 이상의 지지를 받는 오늘날 가자 지구 맹공 만큼은 더 민주주의적인 세력 행사가 있을까요? "민주주의 국가 끼리의 전쟁은 없다"는 자유주의자들의 통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국민" 집단에 대한 절대적 귀속, 그리고 "국민"과 "비국민" 구분의 절대화를 전제로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전쟁을 전혀 배제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가자 지구의 하마스정권도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적으로 탄생된 정권입니다.
 
2.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는 선거 이외의 기간에는 정부의 통치 행위에의 "국민"들의 개입을 거의 허용하지 않습니다. "비국민"은 아예 배제되지만, "국민"의 역할도 투표가 끝나면 그냥 끝납니다. 지난 번에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해온 사람들은 일관되게 70% 안팎이었지만, 아마도 반대자의 비율이 90% 정도 돼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고 뭐고, 재벌의 수출와 통상협상에서의 재벌의 대표자인 정부의 "신뢰성"이 문제가 된다면 "국민"의 의사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3개월동안 매일 집회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민주주의란 사실상 별로 "민주적"이지 않다는 걸, 우리가 그냥 알아야 하는 것이죠.
 
3.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가의 통치권자를 "국민"이 투표해서 뽑는 건 맞지만, "국민"의  생활세계와 의식세계를 좌우하는 것은 자본과 언론과 국가입니다. 유치원부터 "인생은 전쟁터, 사람들은 다 전사, 내가 살려면 나의 경쟁자들이 죽어야 한다, 승리는 모든 수단들을 다 합리화한다"는 걸 체득한 사람들은, 투표 전날에 이명박씨가 본인이 BBK의 실질적인 설립자임을 자인하는 육성을 동영상으로 들어도, 과연 그렇다고 해서 그를 안찍을 것 같습니까? 기존 세대는 물론, 젊은이들을 여론조사해봐도 약 22%가 "부자 되는 것은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답합니다. 참고로, 방글라데시에서 그렇게 답하는 이들은 3%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덕선생"이 이미 경멸적인 표현이 된 지 오래된, 모든 것들이 다 아파트 평수와 연봉 숫자로 재단되는, 약육강식의 왕국에서는 수많은 유권자들은 "성공적인 사기꾼"을 자신의 희망적 모델로 볼 뿐입니다. 다만, 성공적 사기든 실패한 사기든 이 경제적 모델을 이미 아무것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 머리 구조가 조끔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재보다야 낫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민주성은 거기부터 거기까지입니다. 다사다난한 2008년 덕택에 우리가 이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과연 새로운,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색으로 이어질 것인지, 국가주의적 퇴행으로 이어질 것인지 좀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8127

 

 

 

 

박노자: 출생

           1973년

출신지
러시아
직업
사회학자,대학교수,작가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경력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
1996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 역임
위키백과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이 되었다.

한국어로 쓴 여러 이나 기고문 등을 통해 토종 한국 사람보다 날카롭게 한국 사회 각분야의 모순점을 진보주의적 관점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파시즘 경향을 주로 비판하였다. 한겨레 21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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