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달팽이

신자유주의, 일본의 변절과 한국의 맹종

거울닦는 달팽이 2009. 2. 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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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일본의 변절과 한국의 맹종

[우수근의 '아시아 워치']<49>

 

일본 사회 '변절'의 전통은 유서가 깊다. 일본 역사를 보면 아무리 오랜 기간 고집해 왔더라도 더 나은 상황을 위해 필요하다면 어렵지 않게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변절의 전통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한 일본이 현재 또 다른 변절을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환상에 대한 일본사회의 자성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장원리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본사회의 변절은 미국 유학 출신으로 일본 사회에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의 도입과 확산을 주창해 온 나카다니 이와오(中谷嚴) 전 히토츠바시대 교수로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규제 완화∙무한 경쟁∙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조로 한 구조개혁을 주창하며 일본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도사'라 일컬어지던 그는 2008년 12월에 발간한 '자본주의는 왜 자멸했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시장원리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신의 변절을 선언하고 그 오류 및 폐해의 심각성에 대해 설파하고 나섰다.

신자유주의 등에 대한 자신의 맹신은 "미국 유학 때에 경험한 미국의 풍요로움을 부러워하는 가운데 미국 근대경제학적 논리와 표출형식에 압도되면서 미국과 같은 시장원리가 기능하게 되면 미국처럼 풍요해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이후 그는 미국형 자본주의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근간으로 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경제정책과 이후의 일본경제의 방향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그의 '변절 행각'이었기에 일본열도는 더 더욱 큰 충격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1월 말에 가진 온라인 닛케이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신자유주의 사상과 시장제일주의의 결과로 출현한 글로벌 자본주의(미국형 금융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자신의 철저한 전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전세계적인 빈부 격차의 확대나 환경 및 식품오염, 붕괴 일로에 놓인 사회의 유대관계 등은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이 초래한 부산물이라며 또 한번 강하게 자책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본사회가 겪고 있는 각종 병폐를 고려할 때, "미국과 같은 '작은 정부'를 기조로 하는 구조개혁으로는 일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 사회는 개혁되어야 하지만 그 개혁 방식은 철저히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일본이 당면한 각종 어려움의 근원에 대해 "정∙관∙재계라는 '철의 삼각'유착이 심각한 일본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추진된 신자유주의 사상의 도입 시도 그 자체부터가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그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계급사회이며 엘리트 사회인 서구사회와 달리 비교적 평등사회였던 일본에 영∙미 등의 계급사회적 발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신자유주의 체제를 이식하려다 보니 영∙미와 같은 서구사회보다 더 심각한 폐단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구하게 계승되어 온 일본사회의 미덕은 훼손되고 부정되었으며 일본 사회의 강점이었던 의료 및 복지분야에도 경쟁 원리와 경비절감원칙 등이 도입되는 등, 일본 사회는 크게 동요하게 되었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경쟁하고 적대시 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며, 이 속에서 일본 사회는 급격히 황폐하게 되었고 '1억 2천만 모든 일본인의 중산층화'라 칭송되었던 일본의 중산층도 붕괴되며 빈곤층이 급증하게 되었다. 사회가 이와 같은 난맥 속에 빠져들다 보니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흉악 범죄도 급증하게 되었는데, 일본 사회는 이런 식으로 '안심'과 '안전'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일본 사회 전체가 이와 같이 뒤틀리고 흔들리며 붕괴되는 가운데 일본만의 오랜 전통과 미덕 등을 기저로 이뤄져 온 일본기업들도 그 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일본은 한 신자유주의자의 용기 있는 변절 덕에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2차 대전 후의 일본 정치를 '친미'와 '경제위주'라는 기본 프레임으로 깔았던 '요시다 시게루' 전 일본 총리의 외손자로서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원을 거치는 등, 친미 시장주의적 성향이 강한 아소 타로 현 일본 총리마저 "시장에 맡긴다고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고 언급하고 나설 정도로 신자유주의나 시장원리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뼈저린 각성과는 달리 이웃한 한국에서는 실패한 나카다니 식 모델을 타산지석으로 삼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기반으로 한 '돌격 앞으로!'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한 소수의 살찐 청개구리들의 무모한 실험은 속도를 더해만 가고 있으니, 벌써부터 불공평한 세상이 너무도 야속하기만 하다. 이들 청개구리들이 울게 되는 날, 그들은 책임 운운 하는 구차한 변명을 둘러대며 고작해야 물러나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빚어낸 그 처참한 대가로 인해 쓰러지며 죽어나가야 할 자들은 바로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일 테니 이 어찌 제대로 된 세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수근 중국 상하이 동화대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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